【부안여행, 지재고산유수의 시인 석정문학관】

2014. 9. 18. 06:00여행지/전라북도

석정고택 건너편에 있는 석정문학관입니다. 오른편에 청소 하시던 분이 이곳을 관리하고 계신분입니다.

시인의 막내 동생과 대학동기로 아주 친절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전체의 모습을 한번 담았습니다.

 

 

과연 시인의 문학은 어떠한 배움과 깨달음은 갖게 해줄지.....

 

 

안으로 들어와 바라본 모습입니다.

 

 

시대를 밝힌 촛불, 이 말에 전부가 담겨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관장님 덕분에 이렇게 기념사진도 남기게 되었습니다.

 

 

집사람은 안내를 받아 설명을 듣기로 하고 저는 자유롭게 동선을 따라가 봤습니다.

 

 

가람 이병기선생과의 인연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미당 서정주와의 서신도 있었지만, 친일의 전력이 있는 지라 담지 않았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민족일보에 실린 시인의 ‘다가온 춘궁’이란 시입니다.

당시 언론은 피폐화된 농촌현실을 집중 조명하였다고 합니다.

시인은 이에 동참하는 의미로 싣게 됩니다.

하지만 훗날 5.16 군사쿠테타로 인해 민족일보 조용수 사장은 사형을 당하고, 시인 또한 곤욕을 치르게 됩니다.

 

 

‘단식의 노래’라는 글 입니다.

4.19이후 민주화 목소리가 커지고 교원노조 결성을 위해 단식하는 교육자들을 지지하며 쓴 글입니다.

마지막이 ‘우리들의 내일을 위해서, 내일의 민주학원을 위해서...’ 라고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사학비리는 끝이 없습니다.

 

 

전북대학교보에 실린 ‘우리들의 형제를 잊지 말아라’  -4.19혁명에 부치는 노래-입니다.

‘더운피 흘리며 쓰러지던, 우리들의 형제를 잊지 말자’ 라 되어있습니다.

헌데 저는 그 희생에 대한 보답조차 제대로 한 것이 없다는 반성을 했습니다.

 

 

시인의 시대정신은 바로 이런 것이라 느끼고 깨달았습니다.

 

 

교과서에서도 배운 ‘그 먼 나라를 알으십니까’ 를 천천히 읽어봤습니다.

 

 

시인의 집필 모습도 재현해 놓았습니다.

 

 

일제강점기 때 작시한 미발표 시도 있습니다.

설명을 보면 친일 시 청탁이 들어오자 원고청탁서를 찢어버리고, 낙향하여 해방 때 까지 절필을 하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친일작품 창작과 창씨개명을 거부한 작가는 신석정 시인을 포함해 손에 꼽을 만큼 드물었다고 합니다.

 

 

‘지재고산유수(志在高山流水)’ 뜻이 높은 산과 흐르는 물 즉 자연에 있다. 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시인은 자연에 귀의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지조를 지키고자 하는

신념과 기개를 보이는 것으로 의미를 부여했다고 합니다.

그저 외우는 교육만으로 시와 문학의 정신을 어찌 알겠습니까. 시험을 보는 것으로 교육의 정도를 어찌 가늠하겠습니까.

이렇게 살아있는 시대정신을 일깨워 배우고 본 받아야 진정한 참 사람이 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관장님 덕분에 소중함을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마음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