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 베트남 중부도시, 다낭, 호이안, 후에 #38】

2013. 9. 4. 07:05여행지/해외

흐엉강이 유유히 흐르는 언덕에 자리한 티엔무사원에 왔습니다.

엄청나게 지친 상태여서 포기를 하려 했는데,

차 안에서 집사람이 수건에 찬물을 묻혀 준 것으로 머리를 식히고 나니 기운을 차렸습니다.

해서 가이드에게 큰 카메라를 맡기고 작을 것을 들고 올라갑니다. 우뚝 솟은 탑이 반겨줍니다.

 

 

시원하게 흐르는 흐엉강을 바라보고 지친 몸을 달래봅니다.

 

 

역시 4개의 기둥이 있습니다.

 

 

1601년에 창건 되었다는 티엔무사원의 복록보탑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비각도 있습니다.

우리의 비각은 출입을 할 수 없지만, 이곳의 비각은 사방이 트여있습니다.

 

 

그리고 한 걸음 나가면 우리 사찰의 일주문이거나 사천왕문쯤으로 보이는 곳이 나옵니다.

대지혜, 대자비라는 글이 보입니다.

 

 

오른쪽에 종루가 보입니다.

 

 

사찰의 현판이 보입니다. 중국식 한자라서 표기하기 어렵습니다.

영모사(靈姥寺)입니다. 신령스러운 할머니라는 의미인가요?

 

 

사천왕은 아닌 것 같습니다.

 

 

어찌 보는 순간 삼국지의 관운장과 유비가 연상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모습은 장비가 연상됩니다.

 

 

중국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은 것은 아닌가합니다.

 

 

우리로 치면 대웅전의 모습입니다.

 

 

들어 와서 바라본 8층탑의 모습입니다. 아마 벽돌로 만든 모전탑의 양식으로 보여 집니다.

 

 

나무들도 아주 깔끔하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유리 상자 안에 베트남 불상인 포대화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영취고봉(靈鷲高峰), 영험한 수리는 높은 봉우리에 있다, 정도인가요.

 

 

 

우리 일행이십니다. 열심히 예불을 올리고 계십니다.

 

 

사찰의 좌우에 이런 문이 있었습니다.

 

 

드디어 틱광둑 스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으로 왔습니다.

1963년 당시 사이공 십자대로에서 당시 독재정권이었던 딘디엠정권의 불교 탄압과

미국의 공격에 대항해 세계최초로 소신공양을 하시게 됩니다.

이 차가 당시 스님께서 이 티엔무사원에서 사이공까지 타고 가신 차입니다.

 

 

스님은 당신이 앞으로 넘어지면 결과가 흉 할 것이고,

뒤로 넘어지면 길 할 것이라 말씀했다합니다.

여러 스님들과 서양의 특파원들이 지켜보는 가운에 소신공양을 하십니다.

스님은 가부좌를 틀고 뒤로 넘어지셨다고 합니다.

그 후 스님의 시신을 화장을 했는데, 유일하게 심장은 타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해서 서방언론은 영원의 심장이라 보도했답니다.

이에 독재정권은 그 심장을 없애기 위해 황산을 뿌렸지만, 녹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심장을 강제로 빼앗으려 하자 스님들이 금속함에 봉인을 하여

사이공 스웨덴은행의 비밀금고에 맡겼다고 합니다.

지금은 하노이국립은행에 보관되어 있다고 합니다.

당시 베트남의 여왕이라 불리운 사실상의 퍼스트레디였던

마담 뉴가 ‘중의 바베큐라니...“ 운운한 표현을 써서 이것을 월남 바베큐 사건으로 불리 웁니다.

하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미국도 독재정권에 등을 돌리게 되고, 월남전은 월맹의 승리로 끝나게 되지요.

베트남 현대사의 커다란 획은 이곳에서 시작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