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여행, 영월의 가볼만한곳, 단종애사의 청령포】

2013. 1. 25. 07:33여행지/강원도

영월의 오지마을인 모운동을 떠나 청령포에 도착을 했습니다.

차를 세우고 바라보니 무엇가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많이 바뀐듯한 모습입니다.

못보던 조형물도 세워져 있었습니다.

 

 

겨울에 와보는 청령포는 색다른 모습입니다.

남한강 상류가 삼면을 에워싸고 그 뒷쪽으로 육육봉이란 산이 험준하게 솟아있는 곳입니다.

 

 

꽁꽁얼어버린 강으로 인해 배는 운항을 하지 않고 강을 그냥 건너가야 합니다.

 

 

지금처럼 얼음이라도 얼었다면 단종께서 걸어나올수도 있으련만...

청령포에 유배된지 2개월여 만에 홍수로 인해 관풍헌으로 거처를 옮기고,

결국 관풍헌에서 사사 당하시게 되지요.

 

 

이런 빙판길로 건너가야 합니다. 문제는 청령포를 돌아보고 나오면서 입니다.

양쪽에 안전을 위해 쳐놓은 로프가 있고 그 로프를 걸치고 밖으로 걸으면 미끄럼이 훨씬 덜 합니다.

 

 

헌데 이곳의 관리하는 분들은 안쪽으로 들어오라고 종용을 합니다. 보시면 로프 안과 밖이 확연히 틀립니다.

화가난 집사람이 빙판길에 넘어져 다치기라도 하면 자기들이 책임을 질거냐는 겁니다.

빙판길에 미끄럼 방지용 부직포로 길이라도 내어 놓고 안전하게 건너게 하는것이 우선이지요.

배도 운항을 하지 않으며 요금은 2천원을 다 받으면서 안전로 하나 확보를 하지 않는다는것이

말이 됩니까...?  왜...?  발상을 전환하지 못하는 걸까요...?

좀더 즐겁게 하기위해 셔틀용 썰매라도 마련하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는 모양입니다.

그런 이벤트까지는 아니어도 빙판길에 관광객의 안전을 위한 장치는 해놓아야 정상이지요.

 

 

청령포 안쪽으로 들어가니 데크길을 만들어 놓아 편리성과 자연보호를 겸하고 있었습니다.

 

 

청렴포 수림지로 지정된 천년의 숲입니다.

이곳에 오면 수백년에서 수십년된 소나무의 모습이 더 숙연함이 들도록 하였는데...

보호 숲으로 지정이 되었음도 좋은일입니다.

 

 

어소에 딸린 행랑채의 모습입니다.

 

 

단종어소의 앞마당에 세워진 단묘재본부시유지비의 비각입니다.

영조대왕의 친필로 전면에 음각된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 '단종이 이곳에 계실 때의 옛터이다'

뒷면에는 '영조 39년 계미년 가을 울면서 받들어 쓰고, 어명에 의하여 원감영에서 세웠다,

지명은 청령포이다.' 라고 쓰여 있다 합니다. 단종께서 돌아가시고 자그만치 306년이 지나서 세워진 비입니다.

 

 

단종께서 짧은 유배생활을 보낸 거처인 단종어소의 모습입니다.

 

 

담장을 넘어와 어소앞에 마치 부복한듯한 모습의 와송이 충절어린 신하의 모습처럼 보입니다.

 

 

권력의 찬탈...  혈육마저 무참히 없애야 했던 권력에 대한 생각을 해봅니다.

 

 

나이어린 조카를 천혜의 감옥에 가두고 기와집을 지어 놓으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이미 죽은 목슴과 다름이 없었을 단종은 노산군이 되어 이곳에 머물렀습니다.

 

 

스치우는 강바람과 솔잎이 울부짓는 소리에 잠못이루었을 그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요.

 

 

단종이 유배시 저 쌍갈래로 나온 가지 사이에 앉아 쉬곤 했다는 관음송입니다.

수령은 600년이 훨씬 넘었을것으로 추정을 합니다.

 

 

단종의 유배생활 당시의 모습을 보았다 하여 볼 '관',

또한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 하여 들을 '음' 을 빌어 관음송이라 불리워 왔다고 합니다.

 

 

비사가 지나간 한참 후에나 태어났을 소나무들도 관음송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을것 같습니다.

 

 

노산대가 아닌 육육산쪽 전망대로 향해 봅니다.

 

 

유배생활 속에서도 한양에 두고온 왕비 송씨를 그리며 막돌로 쌓았다는 탑인 망향탑입니다.

단종이 손수 남기신 유일한 유적이라 합니다.

아마 이곳에 올라 애절함에 지은 어제시가 이런것이 아닐까 합니다.

 "千秋無限寃 寂寧荒山裡 (천추무한원 적령황산리)  천추의 원한을 깊이 품은채 적막한 영월땅 황량한 산 속에서

                    萬古一孤魂 蒼松繞舊園 (만고일고혼 창송요구원)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푸른 솔은 옛동산에 우거졌구나

        嶺樹三天老 溪流得石喧 (영수삼천노 계류득석훤)  고개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 하다

        山深多虎豹 不夕掩柴門 (산심다호표 부석엄시문)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망향탑에서 바라보면 노산대가 바라보입니다. 왜 노산대라 했을까... 노산군이란 명칭도 강등시킨 명칭인데...

당시의 심정을 헤아린다면 단종어소라 칭하였듯이 단종대라 함은 어떠할지....

 

 

육육봉 험준함이 막아선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자연의 지형을 이용해 가둬 놓을 곳을 도데체 누가 발견하고 말해주었는지... 집사람 뿐만 아니라 저 역시 궁굼해지더군요.

 

 

청령포의 찬바람이 가슴 속 깊은곳 까지 파고듭니다.

 

 

한 뿌리에서 나온 가지가 서로를 베어내고 한 콩깍지에서 나온 콩이 다른 콩을 해하여 할까요...

오직 인간만이 그러한듯 합니다.

 

 

양쪽을 번갈아 가면 오르고 내렸을 단종의 모습이 눈에 아른거리는 느낌이듭니다.

 

 

영조대왕때 세워진 금표비 입니다.

 

 

무언가 하는 것을 하지 못하도록 하는것이 금표비지요.

 

 

단종의 유배 시에는 죄인을 다루는 금표가 되었을것이고...

그후 후손에 의해서는 성지로 받들어 지는 경우가 다 해당한다는 의미에서

같은 말 다른 의미가 있음이 참으로 아이러니 합니다.

 

 

망향탑을 세운 단종의 심정을 어찌 헤아리겠습니까... 그저 갑갑한 심정 달래보려 검은돌 하나 세워봅니다.

 

 

관풍...  바람을 보았는가..? 아마 당시의 피바람을 목도한 역사가 있었을겁니다.

 

 

두견새 우는 청령포 노래비를 마주하고 청령포를 떠납니다.

영월 동강겨울축제를 가볼까 하다 그냥 영월의 이야기가 있는 거리를 향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