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떠나다, 변산, 곰소, 내소사-6 (2009년 크리스마스)】

2010. 7. 8. 15:10여행지/전라북도

내소사 대웅전이 눈에 들어옵니다.

내소사는 1377년 된 고찰입니다.

"여기에 들어오시는 분은 모든일이 다 소생되게 하여주십시요"라는 "혜구두타"스님의 원력에의해

백제 무왕때(633년) 세워진 고찰입니다. (2010년 기준)

내소사의 대웅보전을 중건 할 때 얽힌 두 가지 전설
내소사는 창민선사가 대웅보전을 중건 시 있었다는 두 개의 전설을 소개합니다.

먼저 공포(拱包)에 관한 전설
창민선사가 대웅보전을 중건하기로 결심하고 목수를 정하고 일을 맡겼는데 과묵한
목공은 아무 말도 없이 나무만 다듬고 있으니 잔 심부름하는 사미승이 장난기가
발동하여 공포에 밪칠 목침을(밪침대) 하나를 몰래 숨겨 버렸다,
목수가 목침을 세어보니 한 개가 부족한 것을 발견하고 창민선사에게 말하기를 자기는
수양이 부족하여 목침의 숫자가 하나 모자라니 대웅보전을 지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깜짝 놀란 선사는 목침이 하나 부족 한 것은 이 절과 인연이 없으니 하나를 빼고 지어
달라고 하지만 목수가 좀처럼 승낙을 하지 않으니 더 놀란 사미승이 감춘 목침을 내어놓지

부정 탄 목침은 쓸 수 없다고 말하며 하나를 빼고 대웅보전을 지어 목침이 부족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법당 안 오른 쪽 다섯 째 줄에 목침이 부족한 사연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법당을 완성한 목수는 호랑이가 사람으로 변한(현화=現化)대호선사라고 합니다.
(공포 : 전통 목조건축에서 앞으로 내민 처마를 받치며 그 무게를 기둥과 벽으로 전달시켜주는 조립부분)

두 번째 관음조(觀音鳥)의 전설
법당을 어렵게 완성한 창민선사는 전각에 단청을 칠하고 벽화를 그릴 이를 애타게 찾던

어느 날 한 노인이 나타나서 하는 말이 자기가 단청과 벽화를 완성할 것이니 작업을
할 동안 아무도 안을 들여다 보지 말라고 당부하고 선사가 승낙을 하자 법당 안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 하였습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기간이 한 달이 지나도 도무지 밖에 한 번도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호기심 만은 선우스님이 참지 못하고 몰래 법당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화공은
오간데 없고 오색 영롱한 觀音 鳥 한 마리가 입에 붓을 물고 날아다니며 그림을 그리다가
들어오는 스님을 보자마자 단청 한 곳을 마무리하지 못한 채 그대로 하늘을 향해 날아가고,
날아가던 관음 조는 능가산 중턱에 앉았는데, 그 때부터 노스님이 암자를 짓고 살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그 노인을 관음 조의 화신이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관음 조는 관세음보살의 현신이라고 합니다)

 

 

내소사 경내를 둘러봅니다.

 

 

범종각에는 법고와 범종, 목어가 있습니다.

 

 

전북유형문화재인 내소사 삼층석탑.

 

 

대웅보전 앞에 서있는 아내.  대웅보전의 꽃 문살이 눈에 들어옵니다.

 

 

대웅보전 왼쪽 꽃 문살......

 

 

대웅보전 안을 바라보는 아내......

 

 

"삼성각(三聖閣)의 모습입니다.

 

 

삼성각

한국불교의 사찰에서 삼신을 각각 안치하여 숭배하는 전각.

독성각(獨聖閣)·산신각(山神閣)·칠성각(七星閣)이 있으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신다.

독성각은 불교에서 말하는 독각(獨覺)을 모신 곳이다. 독각은 석가모니처럼 스승 없이 홀로 깨우친 자를 말한다.

대승불교의 교학에서 독각은 타인을 위해 가르침을 설하지 않는 이기적인 자를 뜻하지만,

이 경우에는 좋은 의미의 독각이다.

산신각은 단군이 산신이 되었다는 전설에서 유래하는 산신을 모신 곳이다.

칠성각은 북두칠성에 축원하는 도교의 신앙을 받아들여 북두칠성을 불교의 여래로 조화하여 모신 곳이다.

따라서 삼성각은 불교가 수용되는 과정에서 토착신앙 또는 민간신앙과 융합하여 빚어진 변용이다.

이런 식의 변용은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흔히 목격되는데, 이질적인 신앙을 불교로 포용하여 보다 높은 차원으로

유도한다는 데에 의의가 있으나, 자칫 기복 위주의 주술적 신앙으로 불교의 본질을 왜곡시킬 우려와 폐단도 있다.

실제 그러한 폐단이 있었음은 한용운이 〈조선불교유신론〉에서 무속적인 산신과 칠성을 제거하고 석가모니불만을

봉안할 것을 주장한 데서도 알 수 있다. (다음백과)

 

 

 

 

단청이 없다는것이 오히려 소박하면서 따뜻한 느낌이 듭니다.

 

 

처마 밑 풍경을 통해 능가산을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