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5. 16. 07:07ㆍ간이역
하늘에 떠있는 에드벌룬에 "경축, 예산초등학교 개교 100주년기념"이란 글씨가 아주 선명하게 보입니다.
100년...실감이 나질 않네요. 장터로 변한 교문주변이지만 저 느티나무는 제 어릴적에도 있었던 나무입니다.
아마 100년을 버티고 서있는 우리의 영원한 동창이란 생각입니다.
오늘 전야제의 하일라이트인 조영남씨의 무대가 있다는 알림막이 있습니다.
비록 동문은 아니고 삽교초등학교를 나오셨지만, 같은 고향을 이고 살았던 인연이
축하를 해주시기 위해 기꺼이 초대에 응한듯 합니다.
"예초인 한마음축제..." 그 내용대로 알차고 멋진 축제의 장이 될거란 생각이 듭니다.
청군, 백군이 씌여진 개선문을 보니, 어릴적 운동회가 생각납니다.
비록 런닝셔츠와 소창으로 만든 팬티 한장이었지만...
넓게만 느껴졌던 운동장은 6년동안 달리고 또 달렸던 그때의 추억이... 헌데 가만보니 59회라 적혀있습니다.
졸업기수를 이야기 하는가 봅니다. 그럼 우리기수인 57회는 어디쯤일까...?
60회 급의 동문들도 있는데... 찾다찾다 지금은 상대적으로 좁아진 운동장에서 찾기를 포기합니다.
아마 상인들이 장사진을 치고있는 그쪽 어디쯤 있을거란 짐작만 해봅니다.
다시금 운동장을 따라 걸을을 옮겨봅니다. 예전의 흔적과 요즘의 흔적들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공연무대 뒤에서도 흔적을 찾아보지만 등나무와 사다리처럼 생긴 놀이겸 운동기구도 없어졌습니다.
하기사 그 많은 세월이 흐르고 아이들도 바뀌었는데... 옛날식 놀이가 지금의 아이들에게 맞을리가 없겠지요.
옛날이라면 교장선생님만 오를수 있는 운동장 훈시대(단상)에 올라가 봅니다.
어릴적을 생각하니 언감생신 이런자리를 올라와 보리라 생각이나 했겠습니까.
전야제가 시작 되려면 아직 20여분 남짓 남아있습니다.
예초를 빛내신 제1회 졸업생이신 이태규 박사님의 흉상이 있습니다.
어떤 분 이셨을까요...?
『1919년 경성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1년과정의 경성고등보통학교 사범과에 진학해
1920년 남원보통학교 교사로 발령받았으나 그의 물리·화학 재능을 아깝게 여긴
일본인 선생이 추천하여 히로시마[廣島] 고등사범학교에 관비유학생으로 입학했다.
1927년 교토제국대학[京都帝國大學] 화학과를 졸업하고, 1931년 동대학원의 호리바 신키치[堀陽信吉] 교수 밑에서
〈환원 니켈을 사용한 일산화탄소의 분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43년 교토제국대학의 정교수가 되었으나 8·15해방과 함께 귀국해 경성제국대학 이공학부장을 거쳐
1946년 서울대학교 초대 문리과대학장으로 취임해 후진양성에 힘썼으며
조선화학회(1949년 대한화학회로 바뀜) 창립을 주도했다.
1948년 미국 유타대학교의 교수로 초청되어 갔다.
주요 연구분야는 분자점성학·액체이론·반응동력학·표면화학 등이다.
특히 리-아이링 이론(Ree-Eyring Theory)으로 세계 학계에 잘 알려진 '비뉴턴 유도이론'이라는 논문은
비뉴턴 유동의 여러 가지 현상들을 거의 완전하게 설명해주어 그동안의 이론적 혼란을 극복하는 데 기여했으며
노벨상 후보로 추천되기도 했다.
1971년에 설립된 한국과학원(KAIS)의 해외과학자 국내유치 노력으로 1973년 영구 귀국하여
KAIS 석학교수로 초빙되었다.
1960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석했고 1964년 학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71년 한국 과학기술의 진흥에 대한 공로로 국민훈장 무궁화장 등 다수의 포상을 받았다.』 (다음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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