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가볼만한 곳, 청원의 볼거리 문의문화재단지-6】

2011. 8. 20. 10:08여행지/충청북도

높다란 성루처럼 보이는 대청호미술관의 모습입니다. 정관 김복진 추모미술전이 열리고 있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습니다.

 

 

집사람은 땀도 식힐겸 미술관엘 들어갔습니다. 미술관 주변에 설치된 조형물들을 담아보기로 했습니다.

처음 만난곳은 '애국지사 일곱분의 상'입니다.

 

 

 중앙에 자리한 첫번째 분은 의암 손병희 선생입니다. 이곳 청원 북이면 금암리 출신입니다.

1882년 동학에 입교 후 1897년 동학의 제3대 교주가 되었으며 천도교로 교명을 바꾸었으며,

3. 1운동을 주도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분입니다.  옥고와 병고끝에 1922년 순국하셨습니다. 

 

 

시계방향으로 두번째 분은, 내수읍 세교리 출신으로 1907년부터 1910년 5월 까지 의병장으로 이름을 떨친분입니다.

일제에 체포되어 교수형을 선고 받았으나 일제의 강제 합방 때 사면 받아 풀려나고, 이후 3. 1운동 때에도

고향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다시 체포되어 옥살이를 한 분입니다. 비교적 오래 사시다 돌아가셨습니다. (1883 ~ 1972)

 

 

 권병덕 선생입니다.

미원면 용곡리 출신으로 1894년 동학농민운동때 적극 참여하였으며 손병희 선생과 함께 천도교를

이끌어갔으며, 민족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 하신분입니다. 아쉽게도 해방되기 한해 전인 1944년 돌아가셨습니다.

 

 

신석구 선생입니다.

미원면 급관리 출신이며, 협성신학교를 졸업, 감리교 목사로 활동하다

3. 1 운동에 동참 기독교측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 하신 분입니다.

해방 후 북한에서 활동하다 공산당에 의해 희생당하셨습니다.

 

 

  신흥식 선생입니다.

가덕면 인차리 출신으로 협성신학교를 졸업하고 감리교 목사로 활동 하셨으며,

민족대표 중 기독교 측 대표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날인 하신 독립운동가 입니다.

 

 

신규식 선생입니다.

가교면 인차리 출신으로, 육군무관학교를 거쳐 장교로 임관 하였으며 강제 합방 후 1911년 중국으로 망명,

신해혁명에 참여 하였으며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크게 기여한 분입니다.

 

 

 단재 신채호선생 입니다.

원래 충남 대덕 출신이지만 낭성면 귀래리에서 성장 하였다고 합니다.

성균관 박사 출신으로 황성신문과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로 항일언론투쟁을 펼쳤으며,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과 역사연구를 겸하셨다고 합니다.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참여 하였으며 선생의 민족주의 역사학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엇습니다.

일곱분 중 해방 후 까지 생존하신분은 고작 두분 뿐입니다...

 

 

미술관 옆 물레방아는 물이 끊어진채 휴식을 하고 있습니다.

 

 

애국지사의 동상 앞에서 재롱을 부리는 후손들,

공중부양 인증샷~~^^*  저 분들이 계셔서 너희들이 이런 자유를 누릴 수 있단다!

열심히 뛰어라, 그리고 열심히 살아나가라!, 그러면 행복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