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경주의 가볼만한 곳 -29】

2011. 8. 17. 08:30여행지/경상북도

국지성 폭우 수준으로 비가 내리는 경주시내를 빠져나와 당도한 곳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양동마을입니다.

그칠줄 모르는 빗속에도 마을을 찾은 관광객이 제법 됩니다.

이곳이 양동마을에 들어서면 시선을 확 잡아끄는 가장 중요한 곳입니다.

 

 

월성(경주)손씨와 여강(여주)이씨에 의해 형성된 마을로 500여년을 이어 내려옵니다.

150여채의 기와집과 초가집들로 이루어진 곳으로 마을 자체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1년전인 2010년 7월 31일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습니다.

 

 

맨 위에 걸린 그림과 같은 집입니다.

이곳은 향단이라 불리우는 곳입니다.

조선중종때 회재 이언적선생이 경상관찰사로 부임할 때 임금이 회재선생의 모친을 

돌볼 수 있도록 지어준 집이라 합니다.

흥할 흥(興)자 모양의 99칸으로 지어졌으나 1976년 보수를 하면서 56칸으로 줄어들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임금이 기거하는 곳이 100칸이라 고관대작들은 이를 넘길 수 없어 99칸으로 지었다고 하지요.

 

 

 비가 원망스럽네요...

활동에 많으 제약을 받고 또한 시긴마저 제편이 아닌지라... 꼼꼼히 살피기가 어렵습니다.

 

 

이곳은 정충비각(旌忠碑閣) 입니다.

병자호란때 손종노와 그의 노비 억부가 이천의 쌍령전투에서 전사 하였으나 시신을 찾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를 기리기 위해 정조임금의 명으로 충비각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왼쪽의 정충각은 손종노를 기리는 비각이고 오른쪽은 노비 억부를 기리는 충노각입니다.

노비에게도 비각을 내렸다고 하니 당시로는 아주 파격적인 대우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독립을 위해 산화하신 모든 독립유공자와 그 후손에게도 진정한 대우를 하는 날이 와야만 진정한 독립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조국이 책임지지 아니한데, 누구더러 목숨을 내놓으라 하겠습니까?

비록 천한 노비의 신분이었지만 나라를 위해 희생한 뜻을 이렇게 후대에 받들게 한것만 봐도, 정조임금은 훌륭한 지도자인것이 분명하지요.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매국노 친일파는 3대가 흥하고 독립운동가 집안은 3대가 빌어먹는다...

이 어찌 이런 나라를 만들었단 말입니까... 

 

 

묵묵히 집을 지키는 저 개 만도 못한 꼬라지들...

하기사 일제의 잔재를 청산 못하도록 한 이승만을 아직도 국부라 칭송하고,

일제의 사관학교를 졸업한 고령박씨 독재자를 칭송하고 그 딸이 대권주자 1위인 나라...

나라를 말아먹은 자들에게 또다시 정권을 쥐어주는 이 황당한 나라...

배반의 피를 흠모하는건가? 아직도 정, 관, 재, 학계 등 소위 기득권을 장악한 그들만의 나라...

과연 대한민국은 역사에서 배우는것이 없는 철학빈곤의 나라이고 국민인지...  8.15, 그 의미가 무어란 말입니까.

 

 

향단이 있는곳에서 마을 아래를 내려 보았습니다.

 

 

깊숙히 들어간 마을은 차와 우산쓴 관광객만 없다면 역사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 듭니다.

 

 

비록 억수같이 쏫아지는 비를 맞으며 다니지만 기분만은 좋습니다.

 

 

담장에서 어릴적 시골의 참봉댁 담장이 오버랩됩니다.

 

 

실제로 사람이 기거하고 있기에 더더욱 조심스러움을 갖게 됩니다.

 

 

초가집 추녀 밑엔 장작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방수포로 카메라를 보호 했지만... 또 오작동 합니다. 이런~~...

하는 수 없이 아내가 쓰던 500D를 사용해야 했습니다.  멀리 관가정의 모습이 보입니다.

중종때 청백리로 이조판서를 지낸 우재 손중돈선생이 낙향하여 자손과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지은 집이라고 합니다.

 

 

 마을 입구 연밭으로 내려왔습니다.

비가 많이와서 양동마을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아쉬움은 있지만. 걸음을 멈추어야 할 때는 멈춰야 하지요.

 

 

아쉬움의 시선을 던져봅니다.

 

 

그래도 땡볕에 돌아다니는 것보다는 좋습니다.

 

 

옥수수가 익어가는 이곳, 진정 고향의 품처럼 포근합니다.

 

 

한지공예를 체험하는 곳, 전통된장을 만드는 곳...

 

 

500년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는 곳, 이곳은 양동마을 입니다.

 

 

아스팔트가 주는 아쉬움이 남지만...

이곳이 그저 500년전에 머물러 있는 모습의 언저리가 아닌 알참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지요.

 

 

 기억에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마을의 모습을 조심스레 담아갑니다.

 

 

궃은 날씨에도 사람은 여전히 붐비고 있습니다.

 

 

마을입구를 알리는 표지...  이제 양동마을을 떠날 때가 되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양동마을을 입체적으로 표시한 지도가 있습니다.

지금은 비록 비와 시간에 쫓겨가지만, 다음이란 기회를 빌어 아쉬움을 달래봅니다.

항상 여행의 막바지엔 쫓기는 마음이 들기 마련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