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경주의 가볼만한 곳 -20】

2011. 8. 11. 10:05여행지/경상북도

경주씨티투어의 출발점.  경주 시외버스터미널 건너편, 경주 고속버스터미널과 붙어있는 곳입니다.

 

 

경주씨티투어를 주관하는 천마관광, 그림에서 왼쪽 길건너로 시와버스터미널이, 오른쪽으로 고속버스터미널이 있습니다.

 

 

처음으로 들른곳은 경주 남산지구에 위치한 포석정지.

원래는 포석정(鮑石亭), 즉 전복 포, 돌석, 정자 정, 전복모양의 돌 이 있는곳에 정자를 지었다는 뜻이지요.

지금은 다 사라지고 이 전복모양의 곡수거(曲水渠)만 남아있답니다.

 

 

과연 이 곡수거엔 어떤 비밀이 있을까요?

계곡의 물을 끌여들어 계속적으로 흐르도록 했다고 합니다.

곡수거의 물길은 술잔이 벽에 부딪치지 않고 돌아 흐르는 놀라운 과학 기술이 숨어 있답니다.

또한 흐르는 물에 술을 즐겼던 유적으로는 동양 유일의 귀중한 문화재 입니다.

현재 남아있는 포석정 곡수거는 돌로 거북을 만들어 놓고 계곡에서 물을 끌어들여

그 거북의 입으로 물이 흘러나와 곡수거를 따라서 흘러가게 하였는데 그 거북은 지금은 사라지고 없지요. 
곡수거를 설계한 조상들은 이미 천 년 전에 물과 같은 액체가 흐르는 이치에 대한 학문인 유체 과학에 대해 알고 있었나 봅니다.

물길의 깊이와 폭을 조정함으로써 물의 양과 물이 흐르는 빠르기를 조절하여 물길을 따라 흐르는 잔이

특정지점에서 맴돌이 현상으로 멈춰 서게 했다니.

그러면 그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이 쉽게 잔을 집어 마실 수가 있었죠.

신라시대 조상들이 이와 같은 기술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과학적 고증을 통해 확인되어다고 합니다..
이처럼 술잔이 특정지점에서 맴돌 수 있었던 것은 유체 과학적으로 정교하게 설계되었기 때문이며,

이와 함께 술잔이 흘러갈 때 술잔이 뒤집어지지 않고 술잔의 흐름이 다양한 점 등은 조상들의 높은

과학적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곡수거는 전반적인 형태가 고리모양을 갖춤으로써 정자 아래서도 물놀이가 가능하도록 한

조상들의 과학성과 실용성이 돋보이는 세계에 자랑할 만한 위대한 과학 문화유산입니다.

 

 

 전해오는 바에 의하면 경애왕이 겨울에 이곳에서 연회를 즐기다 후백제의 견훤의 습격을 받아

죽은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 사실 이 부분은 일제강점기때 왜곡 되었다는 것이 맞다고 보아야 할것입니다.

이곳에서 12월에 죽음을 맞이한건 맞지만, 나라가 어지러운 때에 흥청망청하다 망했다?

당연히 망해야 함을 부각시키기 위한 왜곡으로 보입니다.

 

 

 이곳에서 최후를 맞이한건 맞습니다.

하지만 신라의 최대 성지인 남산은 130곳의 사찰터와 400여개의 불상과 탑들이 남아있는 곳으로,

주로 국가의 안녕과 기원의 제사를 드리던 장소이기도 합니다.

물이 꽁꽁얼어붙는 엄동설한에 곡수거에서 연회를 하다가 죽었다는건 어찌 아귀가 맞지 않지요.

아마 신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내고 견훤군의 기습에의해 죽게 되었다고 보는것에 더 설득력이 있지요.

 

 

 가이드의 설명도 이와 유사하게 진행이 되는것 같았습니다.

 

 

이 곡수거에서 행해지는 주연의 이름은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이라 하였다고 합니다.

왕이 흐르는 물에 술잔을 띄워 보내고 그 술잔이 자기 앞에 도착 할 때 까지 해당하는 신하는 

시를 읇어야 하는 연회이며 시를 짓지 못하거나 미진하면 벌주 석잔을 마시게 하는 연회라고 합니다.

어쨋든 슬픔과 아직도 풀리지 않은 신비를 간직한 이곳 포석정지를 떠나 다음 목적지을 향합니다.

 

 

 다음으로 간 장소는 시내에 자리잡은 대릉원(大陵園苑).

 

 

대릉원에 들어오니 시원한 연못이 반겨줍니다.

 

 

가장 커다란 황남대총, 동서의 길이 80m, 남북의 길이 120m, 높이는 낮은곳이 22.2m, 높은곳이 23m에 이르는 무덤입니다.

 

 

넓다란 잔디밭 사이로 오른쪽에 보이는 곳이 천마총입니다.

 

 

연못과 붙어있는 황남대총.

 

 

겹쳐지는 황남대총의 모습입니다.

 

 

이 대릉원에만 크고작은 고분이 30기가 있다고 합니다.

 

 

 쌍분인 황남대총에서 무려 5만 9천여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고 하는군요.

 

 

추운지방에서 나는 자작나무 껍질에 그려진 천마도가 나와 천마총으로 명명된 천마총입구입니다.

 

 

1973년에 발굴된 천마총은 규모가 그리 크진 않습니다.

무덤의 내부를 복원하여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의 복제품을 전시하여 유일하게 일반인이 관람하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천마총 맞은편에 자리한 고분 크기는 천마총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천마총에서 출토된 신라금과, 천마총금관이라고 하지요.

지금까지 발견된 신라금관 중 가장 커다란 금관이라고 합니다.

 

 

고분의 정원으로 꾸며놓은 대릉원...

과연 신라시대 서라벌엔 얼마나 많은 고분이 있었을까?

경주에만 약150~200기라고 하지만 또다른 학설로는 약 2,000여기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답니다.

고분의도시 경주.

 

 

과연 100만 인구가 거주 했다는 신라의 서라벌...

거의 1,000여년 넘는 세월 왕과 왕비, 왕족, 귀족 등의 공동묘지란 표현이 맞습니다.

그것을 전제로 한다면 2,000여기의 고분이 있었을것이란 이야기도 공감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