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의 도시, 경주의 가볼만한 곳 -17】

2011. 8. 10. 08:40여행지/경상북도

우리부부가 묶었던 밸루스관광호텔입니다. 온돌방 6만원 가격 착합니다. 시내쪽에 있습니다. http://www.bellushotel.com/

 

 

경주의 맛 중 하나인 해장국을 먹으러 왔습니다. 이곳이 경주시내 팔우정거리에 있는 해장국 거리 입니다.

 

 

아내와 들어간 곳은 경주해장국집. 그나마 이집엔 아침시간에 현지인들이 많이 찾아오더군요.

 

 

주 메뉴는 콩나물 메밀묵해장국, 선지해장국, 추어탕입니다.

아내는 늘 좋아하는 선지국을 저는 콩나물을 시켜서 아침을 먹었습니다.

여기서 또 맛에 대한 의문이 드실겁니다.

서울분들 입맛엔 착 붙는다고 할 순 없습니다.

우선 선지는 그 맛이 약간 퍼석하다고 하더군요...(집사람),

콩나물에 메밀묵이 들어간 콩나물해장국은 그 국물을 멸치로 냈습니다.

국물이 원액에 가까울 정도로 진한맛이 납니다.

처음엔 시원했는데...  먹다보니 너무진해 쓴맛이 돌기도 합니다.

묵은 맛있습니다. 세명이 갔더라면 추어탕도 먹어봤을 터인데...

하지만 아침밥 한그릇 뚝딱 하는데 별 문제 없습니다.

 

 

아침을먹고 찾아간 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의 릉이 있는 오릉입니다.

입구에 유료주차장이라는 팻말을 보았는데...

차가 한대도 없어서 그냥 세웠는데, 자전거 탄 아저씨가 우리에게 다가오더군요.

주차비 천원이랍니다.

능에 들어갈거냐고 해서 그렇다고 했더니 천원을 더내면 된답니다.

입장료 1인 500원, 주차료 천원입니다.

 

 

오능의 안내판 앞에 서서 일단 일독을 합니다.

 

 

정문의 현판에 신라문이라 씌여있습니다. 또한 신라기원 2천5십3년 이란 문구도 보입니다.

 

 

능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 넓다란 곳에 우리부부만이 유일한 손님이네요.

'신라오능정화사업기념비'라는 비석이 서있습니다.

저런 기념비를 많이 봅니다.

물론 지난세월 이 유적지가 어떻게 복원됐고, 변화했고, 누가했고, 하는 과정을 기념하는건 좋습니다.

하지만 이런걸 궃이 눈에 확 들어오는 곳에 세워야 하는가는 생각해 볼 문제인것 같습니다.

이런건 아예 입구 초입에 세워서 문화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하는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이천여년이 흐른 유적지 한가운데 현대의 기념비를 세운다는건 웬지 쌩뚱맞다는 기분이 듭니다.

다분히 전시성이 포함된 것이란 생각을 지우기 어렵네요.

 

 

이 커다란 신라시조의 능에 우리부부만 있다는것이 어색할 정도로 호젓합니다.

 

 

신도가 이어진 곳엔 홍살문이 서있네요.

 

 

박혁거세의 신도비각인 숭성각의 모습입니다.

 

 

숭성각 안에는 숭성비가 있습니다. 이 비와 비각은 조선 영조35년에 어명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숭덕전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습니다.

 

 

한쪽엔 임진왜란때 박혁거세의 위패를 지켜낸 운암 박언수의 공덕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탄생신화

기원전 69년 여섯 촌장들이 아들을 데리고 알천의 언덕 위에 모여서

백성을 다스릴 임금을 뽑기 위한 논의를 하던중 남쪽 방향의 양산 아래 있는 나정이라는 우물가에서

오색영롱한 빛이 비치고 백마 한마리가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한다.

이들이 그곳에 가보니 박같은 알이 있어 이를 깨어 보니, 잘생긴 사내아기가 나왔다 한다.

사람들은 이러한 연유로 그아이를 혁거세라 이름 지었고, 박에서 태어났다 하여 성을 박씨라 하였다.

그가 곧 박씨의 시조인 박혁거세이다.

같은 날 사량리에 있는 알영정이라는 우물에서는 용이 나타났는데, 왼쪽 갈비에서 어린 여자 아이가 나왔다 한다.

이 아이는 얼굴과 입술은 고왔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를 닮아 보기가 흉해서, 월성 북쪽에 있는 냇물에 목욕을 시켰더니

부리가 떨어졌다. 사람들은 이 아이가 나온 우물의 이름을 따서 알영(閼英)이라 이름지었다.

기원전 57년 이 두 아이가 13세가 되자 박혁거세는 왕이 되었고, 알영을 왕비로 맞아들였으며,

나라의 이름을 서라벌이라고 했다.

이때부터 신라 왕실의 56대 왕은 박, 석(昔), 김의 3성이 돌아가며 하였는데,

그중 박씨 성을 가진 왕은 시조인 박혁거세를 포함하여 모두 10명이다.

박씨는 더러 본관 중 단 1본도 외래 귀화족이 없으며, 모든 박씨는 박혁거세를 유일한 시조로 받들고 있다.

박씨끼리의 혼인을 피하는 이유도 이러한 까닭이다.

 

 

                                                           신도로 이어진 영숭문 신도라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쭉 이어진 신도의 모습입니다.



                                                                 담장 뒤로 보이는 숭성각의 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