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겨울 강화도 둘러보기-15】

2010. 11. 29. 16:24여행지/인천

'광성보(廣城堡)에 왔습니다.

약 350여년전, 조선 효종 9년 1658년에 설치한 해안방어진지입니다. '신미양요'때 미군과 격전을 치뤘었고 신미순의총이 있습니다.

 

 

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한 '안해루'의 모습입니다.

 

 

 '안해루' 오른쪽에 위치한 '광성돈대'를 먼저 들러보고 나오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우선 '안해루' 문 안 천청에 그려진 황룡의모습을 담았습니다.

 

 

'광성돈대'에 대한 설명을 적어놓았습니다.

 

 

작은 입구에서 바라본 돈대의 안쪽모습입니다.

 

 

설명대로 4개의 포좌(砲座 : 대포를 쏘는 구멍)가 있습니다.

 

 

윗쪽에서 내려다본 돈대의 모습입니다.

 

 

3개의 포가 전시되어있습니다. 가장 큰것이 대포입니다.

 

 

보이는것이 소포(小砲)입니다.  조준사격이 가능한 소포는 우리나라 재래식화포 가운데 가장 발달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고 합니다.

 

 

불랑기(佛狼機)라는 화승포입니다. 연속사격이 가능한 발달된 무기로 프랑스군대가 사용하던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름에 '불랑'이란 명칭이 붙은것 같습니다.

 

 

나가는 문으로 오후의 햇살은 길게 늘어지고 인적없는 벤치엔 쓸쓸함만 남아있습니다.

 

 

반쯤 닫힌 '안해루'의 문 너머로 이곳을 바라보는 뭍을 사이에두고 바다가 있습니다.

 

 

 새월의 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문고리가 너무도 무겁게 느껴집니다.

 

 

안으로 들어와 '안해루'의 뒷모습을 담아봅니다.

 

 

공원처럼 조성해 놓은 산책로와 쉼터엔 차가운 바람이 스치고 지나갑니다.

 

 

선현을 기리는 비가 서있습니다, 오랜세월에 음각된 글자가 제대로 보이질 않습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오위장이공복현유?' 五衛將李公福賢遺?' 오위장을 지낸 이복현이란분의 유비라고 보여집니다.

오위장 : 종2품으로 위장이라고도 한다.

정원은 12명이며 타관이 겸했다. 5위는 1451년(문종 1)에 설치되었는데,

각 위마다 5부(五部)를 두고 부에는 4통(統)을 두었다. 또 위마다 위장을 두었으며

그 아래 부장(部將)·통장(統將)을 설치했다.

그러나 실제로 5위장은 5위의 군사편제와는 무관한 별도의 관직으로, 왕이 낙점하여 선발했다.

궁내에 입직하여 5위 소속의 군사를 분정받아 순시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이외에도 조정에 연회나 경축행사가 있을 때 소속군사를 거느리고 궁성마다 정렬하기도 했다.

이처럼 5위장은 왕 주변에서 군대를 통솔하는 관직이므로 대군이나 임금의 신임을 받은 관료가 임명되었다.

1일 3명씩 차례를 나누어 입직하며 3일 만에 교대했다.

입직했을 때는 동·서·남 3곳을 나누어 각각 군사 10명을 거느리고 대궐과 도성의 내외를 순행했다.

왕의 궁궐 밖 행차를 수행할 때에는 휘하장교와 군사에 대해 태형(笞刑) 이하의 범죄를 바로 처단할 수 있는

권한이 있었으며, 그 이상의 범죄는 왕에게 보고하여 척결했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차비노(差備奴)는 20명을 배정해주었다.

조선 후기에 5위의 기능이 유명무실해지면서 정3품직으로 격하되었고,

2명은 조사위장(曹司衛將)이라고 하여 문관을 임명했다.

뒤에 1명은 반드시 문관으로 임명했으며, 또 1명은 문음무관(文蔭武官)에서 통차(通差)했다.

〈대전회통〉에는 3명을 증원하여 15명이 되었다. (다음백과)

 

 

이곳 감나무에는 감이 많이 달려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