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여행-상생의 바람, 제주4.3평화공원 #3】

2014. 7. 3. 06:00여행지/제주도

세계의 민중봉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대만의 민중봉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부패한 관료에 대항한 민중봉기입니다.

50년 만에 진상규명과 위령공원이 조성되었다고 합니다.

 

 

피플파워로 상징되는 필리핀의 민중봉기입니다.

 

 

인종차별을 철폐한 남아공의 사례입니다.

 

 

그리고 독재타도, 민주회복의 광주항쟁입니다.

 

 

다시 제주의 과거사로 돌아가 봅니다. 이승만정권은 초토화 작전을 감행합니다.

 

 

여수 14연대에 제주도로 출동할 것을 명령하지만,

동족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다고 거부하고 반란을 합니다.

 

 

하지만 고립된 섬 제주는 학살 터(킬링필드)가 되고 맙니다.

 

 

당시의 죽임들을 표현해 놓았습니다. 여성, 아이, 총살의 모습 등이 보입니다.

 

 

이 모습은 유해발굴을 표현 하였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이 보입니다.

 

 

마치 천주교 순교자들의 박해 당함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무어라 해야 할지 먹먹하기만 했습니다.

 

 

다랑쉬굴 사건에 대한 설명이 있습니다.

 

 

굴의 현장조사 당시를 재현해 놓았습니다.

 

 

마음이 무거운 정도가 아니라 모든 이성이 정지된 느낌이 들었습니다.

 

 

당시 제주도민의 1/9가량인 2만5천에서 3만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 노약자가 희생자의 33%나 된다고 합니다.

 

 

역사가 이토록 잔인할까요? 아니면 야수가 이리 잔일할까요? 바로 인간입니다.

 

 

유골 되어 돌아온 저들이 도대체 무슨 죄를 지었단 말인가?

 

 

백여 조상에 한 후손이란 이름으로 세워졌던 ‘백조일손비’

4.19혁명이후 유족들이 세운 이 비석은 5.16쿠테타 이후 경찰에 의해 파괴되고 맙니다.

 

 

이 사진을 보고 있는데, 연세 지긋한 할머니 한 분이

아래에 계신 할아버지가 시아버지 되신다고 하시더군요.

 

 

몸에 새겨진 역사의 흔적,

고문의 상처, 총상과 창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살아가야 했습니다.

심지어 그 고통의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55년이 지나서야 대통령의 공식사과가 있었습니다.

 

 

과연 누가 국가권력의 잘못을 제대로 인정한 적이 있었나요?

 

 

평화, 통일, 인권의 상징으로 기억해야합니다.

 

 

많은 소망지들이 붙어있습니다.

 

 

결혼 30주년이면 50대 중 후반에서 60대 초반 정도 되실 겁니다. 참으로 올곧은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 모두 깨어있는 시민이 되어야하겠습니다.

제가 따로이 언급하지 않음은 이분들과 다름이 없기 때문입니다.

 

 

해원의 폭낭을 바라보며 역사의 현장을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