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8. 9. 06:15ㆍ여행지/해외
바다가 접한 면적이 많은 나라의 특징 중 하나는, 문물의 교류 뿐 아니라 종교적 변화를 겪게 됩니다.
토속적 신양의 뿌리는 교류 적 발전을 하면서 바뀌게 됩니다.
불교가 지정학적으로 먼저 정착을 하게 되는 것이
인도부터 시작된 동남아 국가의 고유성을 지닌 종교라 할 겁니다.
그 오랜 역사 속에 근대유럽의 정복욕에 앞잡이가 된
당시의 선교사들이 남긴 종교적 침략(?)의 흔적이 이곳에도 있습니다.
그 당시 선교사들이 저리 고운 문으로, 고운 색상으로 이 머나먼 이국땅을 향하게 하였을까요..?
냉정한 판단을 내리자면 당시 교회의 재정과 밀접함이 있음을 역사에 대한 이해가 있는 사람들은 알고 있지요.
예수께서 부활의 길을 가신 것과는 별 무 이지요.
당시의 서구의 카톨릭은 권력의 중심에서 밀려난 위치에 있었다고 보는 것이 학자들의 공통된 의견입니다.
성인, 또는 더한 신이란 존재를 이용해 자비나 사랑보단, 침략의 첨병역할을 한 것 이지요.
물론 모든 성직자가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성직자는 빈곤하고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해 이 아름다운 보금자리를 마련했을 겁니다.
성당의 웅장한 전면 중간에 사도 베드로가 있는 모습도 특이합니다.
사제관의 모습입니다.
족히 백 살은 넘었겠지요. 세월보다 더한 것을 찾아보려 합니다.
설사 그것이 저 높고 푸르른 창공에 있고, 다다르지 못할지라도 말입니다.
웅장하고 화려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합니다. 물론 유럽의 대성당에 비할 것은 아니지만,
동남아의 국가에서 이런 모습을 본다는 것 자체가 신기한 거지요.
이 회랑은 거닐며, 사랑과 자비가 아니었던 과거사의 벽화를 회상할겁니다.
그래야만이 저 설명문이 옳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이만한 형체가 남았다는 것은 대단합니다.
그 하나만으로도 길고 깊었던 베트남 전쟁의 상흔을 어느 정도 상쇄한다는 생각에 미칩니다.
이곳 다낭 대성당은 이러한 모든 것들을 포함한 곳이라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비록 처음은 정치적 접근이 되었던 베트남 카톨릭의 역사지만
신을 섬기는 일반 백성들의 마음속에 고스란히 녹아들었다는 것은 그 무수한 전쟁 속에서도 이런 모습을
고스란히 남게 했던 것은 아닐까 합니다.
성당이 지닌 색상을 보고 있으니 왠지 익숙한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바로 이곳 사람들이 살아가는 집이며, 건물에 이러한 색상이 있었고, 그것을 보았던 까닭입니다.
해서 더한 친밀감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가지런한 나무가 있고, 또 의자가 놓여 있어,
그늘이 드리워지는 시간이 되면 명상의 공간과 시간을 이곳에서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성당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오랜 역사를 지닌 대성당의 모습이 마치 갓 지어진 그런 화사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
보면 볼수록 커다란 매력으로 다가옵니다.
성당 뒤편에 마리아를 모신 곳이 있습니다.
우리의 성당에서 보면 성모마리아의 상이
비교적 크게 모셔진 것과는 달리 이곳은 소박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마리아를 신적 존재가 아닌 신과 연결해 주는 주선자의 위치에 놓고 섬긴다고 하더군요.
불교국가로만 알고 있던 베트남에서 만난 다낭 대성당의 모습은
종교에 대한 새로움을 배우게 해주었습니다. 역사의 흐름은 어디로 흐를지는 알 수 없지만,
모든 종교는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야 한다는 것이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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