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가볼만한곳, 한글학자 , 독립운동가 석인 정태진선생 기념관】

2013. 4. 26. 06:37여행지/경기도

봄빛 고운 날, 파주 쪽으로 잠시 나섬을 해봅니다.

 처음 목적지로 삼은 곳은 우리의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한글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인 석인 정태진 선생 기념관입니다.

 이곳은 파주 중앙도서관 옆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석제 구조물이 입구에 서있습니다.

 

 

뒤쪽엔 선생의 문학비가 세워져있고 뒷산으로 오르는 산책로가 보입니다.

 

 

정태진 선생의 소개가 있습니다.

 『본관은 나주(羅州). 호는 석인(石人). 아버지는 규원(圭元)이며, 어머니는 죽산박씨이다.

 1925년 3월 연희전문학교 문과를 졸업하고, 그해 4월 함경남도 함흥 영생고등여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1927년 5월 미국으로 유학하여 우스터대학교 철학과, 컬럼비아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를 졸업했다.

 1931년 9월 귀국하여 다시 영생고등여학교 교사가 되었다.

 1941년 6월 조선어학회에서 조선말 〈큰사전〉 편찬전임위원으로 일하다가

 1942년 9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체포되어 홍원경찰서에 구금되었으며,

 함흥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8·15해방 후 〈큰사전〉 편찬에 종사하면서 연희대학교·중앙대학교·동국대학교·홍익대학교 등에서

 국어학 강의를 담당하며 후진 양성에 노력했다.

 1949년 한글학회 이사를 역임했다.

 〈큰사전〉 속간사업에 힘쓰다가 교통사고로 죽었다.

 저서로는 〈조선고어방언사전〉·〈고어독본〉·〈국어학개론〉 등이 있다.

 1962년 건국훈장 국민장이 추서되었다.』(브리테니커에서)

 

 

채 50을 넘기지 못하고 아깝게 세상을 떠나셨지만  한글에 대한 열정은 그야말로 용광로 같으신 분이었다고 합니다.

 

 

크고 넓지 않은 기념관이지만 존경하는 마음과 자세를 갖추고천천히 돌아봅니다. 옥중 시도 있습니다.

 

 

'ㄱ’자 형태의 가옥 두 곳으로 구성이 되어있습니다.

 

 

목조 건물이라 화재의 위험으로 조명을 설치하지 못해 아쉽다고 관리하는 분이 말씀을 해주십니다.

 화재의 위험이 적은 LED등이라도 설치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선생의 흔적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선생의 시, ‘한 생각’과 ‘아름다운 강산’입니다.

 ‘겨레’, ‘배달나라’라는 말이 나옵니다.

 선생의 민족정신을 엿볼 수 있는 그런 시가 아닐까합니다.

 

 

두 분이 관리를 하시는데, 연세 지긋한 문중의 분들이 아닐까 합니다.

 

 

두 분과 잠시 말씀을 나눴습니다. 예산 등의 문제로 관리가 어렵다고 합니다.

 결국 문중에서 조상을 모시는 차원으로 해나갈 수밖에 없다고 하시더군요.

 

 

그래도 이나마 라도 흔적을 볼 수 있음이 다행이었습니다.

 

 

끝으로 선생의 문학비 앞에 서 보았습니다.

 ‘한 생각’이란 시가 각인되어 있었습니다.

 어려웠던 일제강점기, 그 암울했던 시기에 우리의 혼과 다름없는

 한글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님 의 정신에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여 감사드립니다.

 

 

위치는 이 도서관 바로 옆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