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여행, 익산의 가볼만한곳, 백제의 신비, 왕궁리유적】

2013. 4. 2. 06:36여행지/전라북도

아침 일찍 시원한 익산의 맛 집 일해옥에서 시원한 콩나물해장국으로 상쾌한 출발을 하였습니다.

맨 처음 찾아간 곳은 왕궁리에 자리한 왕궁리 유적지입니다.

 

 

이 왕궁리유적은 원래의 왕궁터에 사찰이 들어선 것으로 보인다고 합니다.

해서 이곳 왕궁리 오층석탑이 남아있습니다.

 

 

보이는 것은 담장의 흔적을 복원한 모습입니다.

 

 

발굴 조사 결과 약 1,4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역사의 소중한 유물이니 앞으로 더 많은 발굴과 연구를 통해

정확한 사실을 규명하고 아울러 복원까지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왕궁리 유적 발굴 조사단이 세운 기념비가 있습니다.

 

 

터 만 남아 있는 이곳에 홀로 우뚝 선 오층석탑이 단연 돋보입니다.

 

 

땅은 부드럽고 봄기운이 완연한데, 나무는 아직 겨울옷을 입고 있습니다.

 

 

정확한 축조 시대를 놓고 의견이 갈리고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이 유적지에 입체적인 모습으로 우뚝 서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 아름답고 거대한 탑은 이곳의 지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왕궁 터 에 사찰이 들어섰다는 것은 이곳이 아마 명당이 아닌가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왕궁도 사찰도 그 흔적만 남기고 역사 속에 잠들어 있습니다.

 

 

기와 가마터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옛 돌들이 이곳의 과거를 말하고 있습니다.

 

 

먼 옛날의 모습을 구분하기 위해 이렇게 토층을 돋워놨나 봅니다.

 

 

발굴 조사가 다 이루어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유실을 막기 위해 검은색 보조물로 덮어놓은 모습이 보입니다.

 

 

풀만 무성하고 외로운 소나무가 서있는 이 벌판에 과거 왕궁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봅니다.

 

 

사라진 왕궁은 어떤 모습이었으며, 무엇이 있었고, 또 누가 살았을까...?

그리고 왜 어떤 연유로 소멸이 되었을까..?

 

 

또한 사찰은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들어섰을까...?

그 사찰 또한 왜 사라져야 했던 것일까...?

 

 

탑은 대답이 없습니다.

 

 

그저 묵묵히 그래왔던 것처럼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습니다.

 

 

수많은 유물을 배출 하고도 아무런 일이 없었던 양,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정확한 탄생시기도 알려주지 않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국보인 사리장엄구와 금동여래입상 등 소중한 유물이 이 탑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침시간에 돌아본 왕궁리의 유적은 백제의 신비를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발걸음을 근처에 있는 고도리 석조여래입상이 있는 곳으로 옮겨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