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비의 고장 영주여행, 과거로의 여행, 벽화고분과 금성대군신단】

2012. 12. 5. 00:11여행지/경상북도

수도리 무섬마을과 작별을 하고 선비촌으로 향합니다.  이 선비촌에는 유명한 소수서원이 있습니다.

 

 

선비촌으로 향하는 길목에 아주 소중한 유산이 있습니다.

 

 

바로 과거로의 여행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고분이 있습니다.

 

 

바로 영주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입니다.

 

 

옛모습의 고분의 석실을 복원하여 유리로 덮어놓았습니다.

 

 

발굴 당시 나왔던 석관을 구성한 돌들이라 합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이곳이 과거 고구려와 신라의 접경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고구려인의 무덤이거나 신라로 귀화한 고관의 무덤이란 설이 있다고 합니다.

여하튼 경북땅까지 영토를 지녔던 고구려의 국력을 알 수 있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고분 양 입구에 채색화로 그려진 벽화를 보고 놀랐습니다.

 

  

아무리 못되었어도 1,300년이 넘었을 무덤에서 저런 채색화가 아주 선명히 남아있다는 사실입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설명에 의하면 삼국시대의 회화와 종교관, 내세관 등이 그려져 있다고 합니다.

구름과 산, 아름다움이 표현된것으로 보아 하늘나라가 아닐까 합니다.

 

 

한자와 그림이 있습니다. 창을 묘사한것으로 보아 무장의 무덤이 아닐까 하는 추측도 해봤습니다.

 

 

마치 능수버들 같은 나무가 바람이라도 불면 가지를 살랑거릴듯 합니다.

 

 

무덤 입구에 있던 모습을 안에서 크게 담아봤습니다. 불교의 수호자 같은 뉘앙스가 보입니다.

뱀을 붙잡아 혼내는 모습으로 보입니다.

 

 

이 그림은 좀체로 종잡을 수 없는 내용 이었습니다. 아이들이 낙서를 해놓은것 처럼 보이기도 하구요.

 

 

고분 입구 양쪽의 그림 중 다른 하나입니다.

인물의 묘사를 보아 우리 한반도와는 거리가 있는 모습으로 보여집니다.

해서 불교의 발생지쪽의 원형을 바탕으로 한듯 하였습니다.

머리스타일도 약간 꼬불한 느낌이 듭니다. 참으로 기이함과 마주하였습니다.

천년이 넘는 시공을 건너가 당시의 모습을 바라본 설레임과 놀람은 쉬 가라않지 않았습니다.

더우기 천년도 더 된 고분안에 잠시 들어간다고 상상을 해보세요.

제 사견이지만 이 고분의 출입을 제한했으면 하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관리 하시는 분도 없거니와 출입제한도 없어서 자칫 파손이나 훼손이 우려가 되기때문입니다.

천년 전의 유물을 이리 허술히 하는것은 역사에 대한 죄를 짓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2012년 첫눈을 보았습니다.

멀리 소백준령이 머리를 흰색으로 물들였습니다.

산중의 멋진 눈꽃이 보고싶으신 분은 하늘과 땅님의 블방에서

감상 하시기 바랍니다. (http://blog.daum.net/aaa193/267)

제가 영주땅에 있던날 벗님 께서는 소백산 비로봉에 계셨다고 하시더군요....

그 속살로 들어가 2012년 아름다운소백의 서설을 감상하시기 바랍니다.

 

 

선비촌 못미쳐에 있는 이곳은 금성대군 신단이 있는곳입니다.

 

 

금성대군이라 하시면 다소 생소하실것 같습니다.

대군은 바로 세종대왕의 여섯번째 아들이자 단종의 또다른 숙부가 되는 사람입니다.

 

 

금성대군은 사육신의 단종복위운동에 연루되어. 이곳 순흥땅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 합니다 

위리안치란 죄인을 귀양살이 하는곳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쳐서 가두어 둠을 일컷는다 합니다.

 

 

금성대군은 이곳에서 순흥부사 이보흠과 이곳의 선비들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였다 합니다.

 

 

이 사실을 알게된 관노의 밀고로 인하여 순흥고을은 온통 피비다가 되었고 금성대군과 부사를 비롯하여

수 많은 유림이 순절하였다 합니다.

 

 

이때에 순흥부는 폐부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후 자그만치 200년이란 세얼이 흐른 숙종 9년에 순흥부가 복위 되었으며,

숙종 45년 삼단의 단소를 설치하여 지금까지 제를 모신다고 합니다.

 

 

바로 당신이 위리안치 되었던 곳에 신단이 마련된것이지요.

 

 

그 피빛역사를 고스란히 목도 했을 은행나무와 소백의 모습을 바라봅니다.

 

 

권력은 자식과도 나누지 않는다고 하지요....

하지만 군주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던 사육신과 금성대군을 비롯한 수많은 선비들...

그리고 세상을 등진 김시습과 같은 생육신...

 

 

지금이야 민주주의 사회라 하여 다를까요...?

아닐겁니다. 몇 번의 쿠테타, 그리고 독재와 호도된 역사는 우리를 성삼문이나 금성대군, 김시습을

겉으로는 받드는척 하게 하면서...

 

 

실제로는 신숙주와 한명회 같은 삶을 더 동경하고 있던것이라 여겨집니다. 하지만 훗날 부관참시를 당하였지요.

 

 

 

그러다 보니 의(義)가 아닌 사(詐)를, 공(公)이 아닌 사(私)를 중시하는 풍조가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여 지는것이 아닌가 합니다.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는 애시당초 유전적으로 존재하지도 않으며...

나와 내 가족, 내 혈연, 지연, 학연만 높은 자리 가고 잘먹고 잘살면 된다.

도덕이 밥먹여 주냐...?  그저 승자독식의 룰만이 존재하는 국가와 사회, 학교와 가정을 만들어

버린것이 아닌지요.

바로 문명이 문화를 집어 삼켜버린 괴물같은 사회를 태어나게 한것이지요.  

 

 

저 푸르른 소나무를 바라보면서 만고의 충신들의 절개를 다시금 마음속에 담아봅니다.

사리취의(捨利取義 : 이를 버리고 의를 취함)를 위해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린 그분들을 생각해 봅니다.

 

 

오백년도 더 된 과거에 이곳은 피로 물든 땅이였지요. 그뒤로도 200년간 버림을 받은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다행히 역사는 그들을 추모하고 기리도록 하였습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간밤에 대선주자 TV토론가 있었지요. 제가 정치는 잘 모릅니다.

진정성과 철학은 살아온 과정에서 누굴위하였는가 라는 일괄성에 잘 나타나 있겠지요.

국민의 최대 권리이자 의무는 투표입니다.

그리고 최선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최악을 막야야 하는것입니다.

그래서 최선이 없으면 차선을...  최악이 아닌 차악을 선택 하는것이 투표입니다.

참여치 않고 왈가왈부 하는것은 최악을 선택했음을 스스로 자랑(?) 하는것과 다름이없겠지요.

역사를 통해 배우고 깨달치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