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떠나다, 가볼만한 곳, 단양, 영월-4 (2010년 2월)】

2010. 7. 9. 10:10여행지/충청북도

예전에 아이들 어릴 때, 기차타고 단양에 왔던기억을 더듬어 단양역을 보러 왔습니다. 멋지게 꾸며놓은 기차를 식당 등 시설로 꾸며놓았습니다.

 

  

다섯량짜리 기차, 색도 예쁘게 칠해 놨습니다.

 

 

역 광장엔 도담삼봉을 축소판으로 만들어 놔서 역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볼 거리를 제공합니다.

 

 

여행자 카페 "칙칙폭폭"~~

 

 

칙칙폭폭 문화학교, 미술교실.  한 여행자가 기차에 그려진 그림을 처다보고 있습니다.

 

 

미술학교 앞에 전시된 작은 목제 장난감.

 

 

구인사로 넘어가는 길에서 만난 계곡. 아마 보발캠프장으로 기억됩니다.  여름이라면 상당히 운치있고 시원하리란 느낌이 듭니다.

 

 

오랫만에 구인사를 보려고 험한 고갯길을 넘어왔는데......

마침 정월대보름이라 구인사 경내 주차장이 만차입니다.

차를 대기도 힘들어 아내와 상의하여 점심을 먹고 곧장 영월로 넘어가기로 했습니다.

식당에 차를 주차시키고 점심을 기다립니다.

 

 

점심을 먹고 영월로 가는 도중에 리프트장 시설이 있는곳인데, 아름드리 나무가 멋있어서  둘러보고 갑니다.

 

 

한 여름 무더울때 나무로 지어진 쉼터에서 수박이며, 김치에 시원한 동동주 한 잔하고

낮잠한번 늘어지게 자고나면 더위와 짜증을 날려 버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드디어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경계선에 도착했습니다.

 

 

충청북도의 상징물로 온달장군과 평강공주가 서있습니다.

 

 

지방도로 표지석입니다.  이 표지석을 기준으로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경계가 되는 것이지요.

 

 

강원도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석상이 반겨줍니다.

김병연
본관은 안동. 자는 성심(性深), 별호는 난고(蘭皐), 호는 김립(金笠) 또는 김삿갓.
그의 일생은 여러 가지 기록과 증언들이 뒤섞여 정확하지는 않지만 대략 다음과 같이 전해온다.
6세 때에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할아버지 익순(益淳)이 평안도농민전쟁 때 홍경래에게 투항한 죄로
처형당하자, 그는 황해도 곡산에 있는 종의 집으로 피했다가 사면되어 부친에게 돌아갔다.
아버지 안근(安根)이 화병으로 죽자 어머니는 자식들이 폐족(廢族)의 자식으로 멸시받는 것이 싫어
강원도 영월로 옮겨 숨어 살았다. 이 사실을 모르는 그는〈논정가산충절사탄김익순죄통우천
論鄭嘉山忠節死嘆金益淳罪通于天〉이라는 할아버지 익순을 조롱하는 과시(科詩)로 향시(鄕詩)에서
장원하게 되었다.
그뒤 어머니로부터 집안의 내력을 듣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과 폐족의 자식이라는
세상의 멸시를 참지 못해 처자식을 버려두고 집을 떠났다.
자신은 푸른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면서 삿갓을 쓰고 방랑했으며, 그의 아들이 안동·평강·익산에서
3번이나 그를 만나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지만 매번 도망했다고 한다.
57세 때 전라도 동복현의 어느 땅(지금의 전남 화순군 동복면)에 쓰러져 있는 것을 어느 선비가 자기 집으로
데려가 거기에서 반년 가까이 살았고, 그뒤 지리산을 두루 살펴본 뒤 3년 만에 쇠약한 몸으로
그 선비 집에 되돌아와 죽었다고 한다. (다음백과)

 

 

강을 끼고있는 도로변엔 저런 돌탑도 쌓아 놓았습니다.

 

 

애들한테 전화가 온 모양입니다.

 

 

양 도의 경계를 뒤로하고 강원도 영월땅으로 들어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