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땅, 영동의 가볼만한곳, 난계 박연의 자취가 있는 국악의 거리】

2012. 10. 17. 07:04여행지/충청북도

국악의 고장인데 아니들리면 서운할듯 하여 국악의 거리에 당도했습니다.

난계국악기체험전수관 건물이 제일 먼저 보입니다.

 

 

          난계국악축제를 알리는 모습이 곳곳에 있습니다.

 

 

이곳에 들린 이유는 바로 이 천고을 보기위함이었습니다.

 

 

세계 최대 북 으로 자리매김한 천고입니다. 무려 7톤이나 나가는 북 이랍니다.

 

 

오룡의 단청 중 한마리를 담아보았습니다.

 

 

  장식 하나 하나에도 타악기 장인이신 이석제 장인의 땀방울과 영혼이 담겨진듯 합니다.

 

 

천고를 보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북소리가 울리면 진정 하늘높이 울려퍼질것 같았습니다.

 

 

난계 박연선생의 동상이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난계선생의 가훈 17조도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효자였던 난계선생에 얽힌 일화를 영동군청에서 빌려왔습니다.

 난계 박연은 고구려의 왕산악(王山岳)신라의 우륵(于勒) 과 함께우리나라 우리나라

삼대악성 으로 불리워 지거니와 박연의 탄생지요 묘소가 있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어

위대한 악성(악성)의 일면을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어릴 때의 박연은 가야금을 매우 잘 타서 날아가는 새와 짐승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 와서

가야금 연주에 맞추어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올 정도이다.

음악에 천재였던 박연은 어릴 때부터 사람과 짐승의 마음을 하나로 통하게 하여

거의 신인(神人)에 가까웠으며 또 망고의 효자로 높았다.

박연의 어머니가 죽어서 심천면 마곡리에 묘를 쓰고 시묘(묘옆에 움막을 짓고 묘를 짓고 모시는 일) 살이를

하던 때의 일이다. 소년 박연이 매일 밤 어머니의 무덤 옆에서 꼬박 밤을 새우다시피 하자

시묘 첫 날밤부터 어디서 나타났는지 호랑이 한 마리가 묘 앞에 쭈그리고 앉아 어린 박연과 묘를 지켜 주는 것이었다.

그 이튿날도 또 그 다음 다음 날에도 호랑이는 걸르지 않고 소년 효자를 지켜 주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호랑이는 밤이 늦도록 묘 앞에 나타나지를 않았다.

박연 소년은 은근히 호랑이의 안부가 궁금 하였다.

움막 옆에서 매일 밤 어린 효자를 지켜주던 고마운 호랑이였으니 기다려 질 법도 하였다.

호랑이를 기다리기 위해 소년 박연은 새벽녘까지 잠을 한 잠도 이루지 못했다.

소년 박연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밤마다 움막 옆에서 묘와 박연을 지켜주다 그만 몸살이라도 난 것일까

도대체 이것도 저것도 아니면 아주 어디 먼 곳으로 떠나가 버린 건 아닌가 모를 일이었다.

잠을 설친 소년 박연은 거의 먼 동이 틀 무렵에서야 겨우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데 소년 박연이 막 잠이 들다 꿈속에 호랑이가 나타나 말하기를

「상주님‥ 상주님 제발 저를 살려 주옵소서 저는 당제(지금의 길현리)에서 함정에 빠져 바로 죽게 되었습니다.

상주님‥‥」 소년 박연은 꿈속에서 벌떡 일어났다. 과연 꿈이었으나 소년은 도무지 호랑이의 애원이

꿈만 같지가 않았다. 「호랑이가 함정에빠져 눈물로 호소해 왔는데 내가 이러고 있다니‥」

소년 박연은 어머니의 묘소를 떠나 당제 쪽으로 달렸다.

내를 건너고 언덕을 넘어 당제까지 달려갔을 때 거기에는 놀라운 사태가 벌어져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함정에 빠진 호랑이를 꺼내 놓고 삥 둘러서서 지켜보고 있었다.

소년 박연은 사람들을 헤치고 들어가 호랑이를 보았다.

틀림없이 어머니 묘소를 지켜주던 호랑이었다.

그러나 호랑이는 이미 숨이 진 뒤여서 박연이 어떻게 손 쓸 도리가 없었다.

소년 박연은 눈물을 흘리면서 마을 사람들에게 자기와의 관계를 설명해주고 호랑이를 돌려 줄 것을 부탁했다.

마을 사람들은 박연의 효심과 짐승과의 인연을 귀하게 여겨 호랑이를 넘겨 주었다.

박연 죽은 호랑이를 어머니 묘소 밑으로 매고와 정성을 다해 묻어 주었다.

박연은 해마다 이 호랑이 무덤에 제사를 지내주어 생시의 고마움을 추모하였는데 박씨 문중에서는

박연 어머니의 묘소에 제사를 지낼 때마다 반드시 호랑이 무덤에도 제사를 지내 주었다고 전해 온다.】

 

 

난계사를 향하는 곳에 세워진 홍살문입니다.

 

 

시간적으로 다 볼 수 없기에 아쉬움을 접어야 했습니다.

 

 

이쪽으로 올라가면 악성 난계선생의 유택으로 가게됩니다.

 

 

국악의 거리 모습입니다.

 

 

그저 평범하고 평화로운 마을의 모습이 편안합니다.

 

 

금강의 물줄기가 휘감아도는 모습이 너무나 수려 하였습니다.

 

 

강 건너편 정자에 사람이 한분 있었습니다. 나중에 찾아보니 저곳이 호서루라 하더군요.

호서루에서 굽어보는 금강도 상당히 아름다울듯 하였습니다.

 

 

금강은 그저 말없이 흘러만가고... 영동의 산자락을 이고가는 뭉게구름도 여유롭기만 합니다.

 

 

         난계선생의 터전에서 느껴본 국악의 향기를 뒤로 하고 마지막으로 영동 소석고택을 향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