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받은 땅, 영동의 가볼만한 곳, 영동의 고택, 성위제 가옥】

2012. 10. 11. 07:03여행지/충청북도

성위제 가옥은 백로서식지로 유명한 봉림리에 있습니다.

 

 

마을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느티나무가 아름다운 동리임을 말해줍니다.

 

 

돌담을 쌓고 흙으로 마무리한 담벼락 안에는 커다란 감나무 두그루가  집과 함께한 세월을 이야기 해주고 있습니다.

 

 

마침 보수작업을 하는 중인듯 합니다. 오래되었으니 당연히 보수를 해야겠지요. 비록 화장실이라 할지라도요.

 

 

이 마굿간인 초가채도 새로이 만들어 놓은듯 합니다.

 

 

특이한 구조를 지닌듯 하였습니다. 설명에 의하면 앞에 보이는 초가집이 사랑채라 합니다.

 

 

전면에 보이는 것이 안채이고 왼쪽의 초가집이 사랑채고

오른쪽 가운데 독립적으로 보이는 초가가 뒤주, 붙어있는 초가가 광채라 합니다.

 

 

모든 건물이 20세기초 이후의 건물인 반면 지금 보시는 광채만이 18세기의 건축물로 추정된다고 합니다.

 

 

이곳은 문간채 입니다. 허나 구조적인 것으로 보아 아주 특이함이 많았습니다.

아마 대문이 따로이 존재했던것이 아닌가 합니다.

 

 

최참판 고택에서 실존하는 분의 생생한 말씀을 들어서가 아니라도, 영 설명이 부족 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가 없더군요.

 

 

기이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가옥에 머리를 갸우뚱 해봅니다.

 

 

이렇게 닫혀 있습니다.  보시고 원상복구 해놓으시면 됩니다.

 

 

가옥에 대한 안내입니다.

허나 아무리 보아도 18세기에 만들어 졌다는 광채에만 집중적인 조명이 되어 있습니다.

왜 안채는 기와로 올렸는데 나머지 사랑채와 문간채 들은 초가인지...

원래의 규모는 어찌 되었는지...? 이런 궁굼증은 해소할 길이 없더군요.

 

 

이 뒤주 역시 안채옆에 있던과 같은 구조입니다.

그러면 바깥에도 뒤주가 있을만큼 부농의 집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헌데 그러한 설명보다는 건축기법에 대한 설명이 위주였습니다.

일반인들은 그러한 건축학개론보다는 보편적인 사실이 더 중요하지요.

실제의 모습은 어떠했고, 어떠한 계층의 누가 살았던 집이며...

그 다음에 건축미가 나오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역사성에 기인한 기승전결이 엉망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저 성위제 가옥, 그리고 아주 특이한 구조의 가옥이었다는 사실만 알고 가게 되었습니다.

 

 

대추가 어마어마하게 열렸습니다.

땅위에 떨어진 토실한 몇알을 주워 먹어보니 그 맛이 아주 일품이더군요.

집사람이 이렇게 많이 열린 대추나무는 처음 본다면서 신기한듯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쉬움이야 늘 있는법이지요. 하지만 그 덕분에 안목과 깨달음도 늘어가니, 비긴셈 쳐야지요.

 

 

그저 계절만이 변함없이 오가는 시골길이 좋기만 합니다.

 

 

아마 이 느티나무는 옛날의 이야기와 모습들을 고스란히 알고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