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의 가볼만한 곳, 보은의 볼거리 속리산 법주사-4】

2011. 8. 25. 10:20여행지/충청북도

법주사 금강문을 마주대하고 섯습니다.

밀적금강과 나라연금강이 있고, 사자를 타고있는 문수보살과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습니다.

 

 

웅장한 크기의 금동미륵대불의 모습이 시선을 잡아끕니다.

 

 

당간지주 역시 시선과 관심을 갖기에 충분합니다.

 

 

크기와 재질에서 압도적인 철당간지주 입니다.

금강문을 들어서면 바로 좌우에 당간지주(幢竿支柱)와 철확(鐵)이 마주 보고 서 있다.

당간지주는 당간과 지주가 합쳐진 말이다.

당간은 절의 행사나 법회 등을 알리는 안내문을 높게 세운 깃대로서 찰(刹) 또는 찰주(刹柱)라고도 부른다.

지주는 이 당간을 세울 수 있도록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버팀돌이다.

일반적으로 당간은 목재로 만들기 때문에 남겨진 예가 거의 없고 지주만 남아 흔히 당간지주라고 부른다.

법주사의 당간지주는 고려 초인 1006년(목종 7)에 조성된 것으로서, 조성 당시의 높이가 16m에 이르렀다고 한다.

그 뒤 조선 후기인 1866년(고종 3) 대원군의 명령으로 국가에서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하기 위해

사찰의 많은 금속물들이 징발 당했다.

이런 과정에서 당시 용화전의 미륵장륙상과 이 철당간이 사라졌던 것이다.

1910년 무렵 22m 높이의 철당간을 확대, 복원하였고 1972년에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법주사 홈페이지 소개)

 

 

당시 주지스님이었던 박탄성스님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당시 불사에 참여했던 충청북도 도지사 등, 관련자의 직책과 이름도 새겨져 있습니다.

 

 

금동미륵대불에 대한 설명입니다. (법주사 홈페이지에서)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을 처음 지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시대에 들어와 대원군이 경복궁을 중수할 때 몰수되었는데,

1964년에 시멘트로 다시 불사를 했다. 1990년에는 붕괴 직전의 시멘트 대불이 청동대불로 다시 태어났다.

2000년 들어 원래 제 모습을 찾아주자고해서 금동미륵불 복원 공사를 했다.

3mm 두께로 황금을 입히는데 모두 80kg이 들어갔다.

 

 

법주사 석연지의 모습입니다.

 

 

석연지(石蓮池), 돌로만든 연꽃 연못...

 

 

국보인 석연지에 대해 법주사의 설명을 담아봅니다.

능인전 앞에 국보 제64호로 지정된 석연지(石蓮池)가 있다.

높이는 200㎝, 전체 둘레는 665㎝에 이르는 이 거대한 조형물이 어떠한 용도로 쓰였는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연꽃 모양으로 조성된 연못이라는 뜻에서 연지라고 부른다.
전체 구조는 네 부분으로 나뉜다. 전체 석조물을 받치고 있는 지대석과 팔각 기단부,

그 위의 구름과 연꽃의 형상이 조각된 원통형의 중대석, 석연지의 몸체, 그리고 상단의 난간이 그것이다.

기단은 외곽에 장방형의 부재로 사각의 테를 두르고 안에 지대석을 두었다.

하대석은 팔각으로 각 면에 안상과 우주를 새겼다.
위에는 3단의 층단으로 체감을 줄여 올라 가다가 복련으로 살짝 덮었다.

중대석은 전체 구조의 기둥 역할을 하는데 둥글게 피어나는 구름문양이 사방을 감쌌다.

위의 거대한 상대석을 받치기 위해 윗면을 아래보다 넓게 하여 안정감 있어 보인다.

상대석인 연지는 반구형(半球形)이다.
밑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3단의 커다란 앙련을 새겼고 다시 그 연꽃 속에는 보상화문을 화려하게 나타냈다.

연지의 가장 윗부분은 일종의 난간처럼 보인다.

즉 연지 위에 동자 기둥을 세우고 난간이 올라섰는데, 둥근 원형 면마다 천인상(天人像)을 새겼다.
일부가 파손되기는 했지만 상단에 놓인 이 난간의 형상으로 미루어

혹 향로(香爐)를 조성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추정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한 송이 연꽃을 염두에 두고 조성했으면서도 섬세하게 조각하여 재질이 화강암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합니다.

 

 

 돌로만든 물그릇인 석조를 가족들이 감상하고 있습니다.

1,300여년 가까이된 석조가 온전히 보존되어있으니...

높이 94cm, 길이가 446cm, 폭이 240cm로 3,000명의 승려가 사용했다고 하는데...

아마 물이 계속 흘러넘치도록 해서 사용했던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