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여행, 베트남 중부도시, 다낭, 호이안, 후에 #34】

2013. 8. 29. 07:39여행지/해외

카이딘 왕은 응우웬 왕조의 열두 번째 왕입니다.

재위 기간은 불과 9년에 불과 하다고합니다. 그가 잠들어 있는 카이딘 왕릉에 왔습니다.

용인지, 봉황인지 잘 구분이 되질 않습니다.

 

 

초입부터 가파른 계단으로 이루어 졌습니다.

 

 

이들은 중요한 곳의 입구에 4개, 혹은 5개의 상징물이 있습니다.

4개는 동서남북이나 사계절을 의미하고, 5개는 오행이나 오방색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중간에 한번 쉬고 바라봅니다. 아마 왕릉의 관리를 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후에의 하늘이 유난히 아름다운 날입니다. 하지만 날씨는 무척 덥습니다. 아리따운 베트남 처자가 앵글로 들어왔습니다.

 

 

또 다시 나타난 계단을 올려다봅니다. 이곳 역시 네 개의 기둥이 서있습니다.

 저도 아오자이를 입은 처자를 뒤따라 올라갑니다.

 

 

중앙에 위치한 것이 카이딘 비석입니다. 카이딘 왕은 게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호의호식하고 사치가 심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사회주의 국가이다 보니 봉건왕조를 폄훼 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는 것도 설득력이 있습니다.

승자의 입장에서 서술한 역사는 비틀기가 있기 마련이지요. 백제의 의자왕처럼 말입니다.

 

 

문인석과 무인석이 있습니다.

재미난 사실은 카이딘왕의 키가 153cm인데 자신보다 키가 큰 사람은

인재로 등용하지 않았다고 하네요, 해서 이곳의 석상들도 다 작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 역시 그리 신빙성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석재로 이루어진 곳에다 그늘도 없어 저도 조금씩 지치기 시작합니다.

 

 

관광객도 외국인과 베트남인의 구분이 확연하게 됩니다. 복장만 살펴보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왕릉은 어떠한 형태일까 궁금했는데, 마치 작은 궁전처럼 만들어 놓았습니다.

 

 

이런 상징탑이 비석이 세워진 비각의 좌우에 한 개씩 서있습니다.

 

 

다낭이나 호이안에서 많이 볼 수 없었던 산자락도 보입니다.

 

 

드디어 왕릉의 심장부에 다가섭니다.

문 위에 양각된 글을 보니 현인유기(顯仁由己) 라 양각이 되어있었습니다.

후에 왕궁에서도 많이 본 현인, 즉 어질다는 의미가 이곳에도 있습니다.

굳이 해석을 한다면 어질고 스스로 자유롭다 라는 정도가 될까요?

 

 

야릇한 장식입니다.

설명을 들어보니 이 왕릉의 건축 양식은 프랑스 스타일이라 합니다.

해서 자세히 보니 통석재가 아닌 시멘트였습니다.

 

 

왕릉의 주 건물은 앞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고 옆으로 나 있는 이 문을 통해 들어갑니다.

 

 

아마 중앙의 문은 제사를 올릴 때 왕이나 왕족이 사용했던 것이라 여겨집니다.

 

 

저도 천천히 왕릉의 중심부를 향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