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떠나다, 1박2일 아산, 예산, 덕산-7】

2010. 7. 3. 12:23여행지/충청남도

                 덕산온천에서 하루를 묶고 추사고택을 찾았습니다.

 

 

   김정희(金正喜, 1786년 ~ 1856년)는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서예가·금석학자·고증학자이다. 본관경주,

                   는 완당(阮堂)·추사(秋史)·예당(禮堂)·시암(詩庵)·과파(果坡)·노과(老果) 등이다.

한국 금석학의 개조(開祖)로 여겨지며, 한국과 중국의 옛 비문을 보고 만든 추사체가 있다.

그는 또한 난초를 잘 그렸다. (다음백과)

 

 

                 조상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조용히 걸음 걸음 옮기며 둘러봅니다.

                조선후기의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의 생가인 추사고택은 추사의

                 증조부인 월성위 김한신이 건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추사고택은 266.11m²(80.5평)으로

                 솟을 대문의 문간채, ㄱ자형의 사랑채, ㅁ자형의 안채와 추사 선생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사당으로 이루어져 있는 가옥이다.

                 ㄱ자형의 사랑채는 남쪽엔 한칸, 동쪽에 두칸의 온돌방과 나머지는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안채에는 6칸 대청과 2간통의 안방, 건넌방이 있다. 이밖에도 추사 선생의 묘소와 증조부이신

                 김한신과 부인인 화순옹주의 합장묘 그리고 화순옹주 열녀문 즉, 홍문이 있다.

                 또한 추사고택에서 북쪽으로 600m쯤 올라가면 천연기념물 제 106호인 백송을 볼 수 있는데

                 백송은 중국북부 지방이 원산지로 우리 나라에 몇 그루없는 희귀한 수종이다. 예산의 백송은

                 추사선생이 25세 때 청나라 연경에서 돌아올 때 백송의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던 것으로, 원래는 밑에서 50cm부터 세줄기로 자라다가

                 서쪽과 중앙의 두 줄기는 부러져 없어지고 동쪽의 줄기만이 남아서 자라고 있다. 1980년도에

                 줄기의 피해 부분을 외과 수술하여 치유하였고, 그 후부터는 철저하게 보호, 관리하고 있다.

                 (출처 : 추사 고택 관리사무소)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가는 길.

 

 

 

 

                 추사영정이 액자에 모셔져있어서 반사되었습니다.

 

 

 사당에서 내려다본 고택.

 

 

    사랑채 뒷쪽.

 

 

안채입니다.

 

 

 

 

 

 

 

 

추사의 유택입니다.

 

 

안내 팜플릿을 살펴보는 아내.

 

 

컨디션이 좋지않아서 아내만 추사기념관을 들러보라고 하고 차에서 휴식을 취했습니다.

 다른 계절에 다시와서 꼼꼼하게 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