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떠나다, 1박2일 아산, 예산, 덕산-3】

2010. 7. 2. 16:09여행지/충청남도

예산 대흥면 소재 옛 임존성의 임성아문(任城衙門)이 있는 곳에 왔습니다.

200여년이 넘은 느티나무를 역광을 통해 실루엣을 담아봅니다.

 

 

어릴적 교과서에서 배웠던 "의 좋은 형제"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추수를 하고 형제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에, 밤중에 자신의 볏단을 상대의 벼 낟가리에 

기져다 놓다는 얘기로, 조선시대 실제로 존재한 이성만, 이 순 형제의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는 교과서에 실려있을 뿐만아니라, 모 라면업체에서 "형님먼저!~ , 아우먼저!~"라는

광고문구로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어느분이 형이고 어느분이 동생일까요?

 

 

 

 

 

좌측에 있는분이 형입니다. 우리의 전통적 배경을 참고해보면, 좌측이 우선시 되는걸 알 수 있습니다.

 

 

임성아문 :

조선시대 대흥군의 현청으로서 대흥군 공해조에 의하면 객사에는 정청 3칸, 동대청 12칸, 은사정 14칸,

서헌방 16칸, 하마대 4칸이 있었고, 아사에는 구동헌 9칸, 신동헌 16칸, 남상방 4칸, 북상방 5칸,

대청 6칸, 초당 5칸, 행랑 7칸이 있었던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관아 내에는 동헌과 그 앞에 '임성아문'의 현판이 걸린 아문만이 남아 있다.

동헌은 역대 군수들이 집무를 보던 정청으로 정면 6칸, 측면 3칸의 - 자형 건물로 구조는 4벌대로

높게 쌓은 장대석 기단 위에 전면에는 방형의 초석을, 후면으로는 덤벙주초석을 혼합하여 놓았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1981년에 해체 복원하여 옛 모습을 다시 찾았다.

대흥동헌은 조선 태종 7년(1407)에 창건되었고, 1914년에 대흥면사무소로 개조하여 사용되다가 1979년 해체복원 정비되었다.

대흥동헌은 기본 구조가 잘 남아 있고, 예산지역에 현존하고 있는 유일한 관아건물이며

1405년에 건립된 대흥향교와 함께 대흥지역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로서 역사적·건축학적 보존가치가 있다. 

대흥아문이라 않하고 임존아문이라 칭하는것은 이곳이 통일신라때 임존성의 관할로 고려때 대흥이라

지명이 바뀌었기때문 입니다.

 

 

 

동헌 왼편으로 들어가는 문.

 

 

 

 

 

 

 

 

장독이 상당히 많이있습니다.

이곳에서 "산넘어 남촌에는"이란 드라마에서 종가집으로 나왔다니, 하면 사실 저 장독은 소품입니다.

지금은 주거문화가 실내형이라 저런 장독을 사용하지 못하지만 예산은 항아리로도 유명한 고장입니다.

 

 

걸어놓은 멍석과 소주항아리도 보입니다.

 

 

행랑채처럼 보이는 방.

 

 

대나무를 가로질러놓고 씨옥수수가 걸려있습니다. 뒤엔 조리를 걸어두었습니다.

 

 

200여년이 넘은 고목의 위용에 더욱 멋있어보입니다.

 전에 같으면 이런 한적한 시골에 자리잡은 좋은곳들을 쉽사리 알지도 못했고

설사 고향 인근이라, 알고 있다 하더라도, 직접 찾아가기는 힘들었습니다.

지금은 인터넷의 등장과 생활패턴이 과거와 다르기 때문에 정보를 접하고

쉽게 찾아갈 수 있기때문에 지자체에서는 더욱 많은 관심과 지원이 요구됩니다.

 

 

뻗어나온 나무가지 한켠에서 2백년 세월을 느껴보려 합니다.

저 가지끝에 보이오면 또다시 파란 새순이 올라와 무성해지고

그 세월이 반복되어 다시 200년이 흘러도 그대로 있기를 바래봅니다.

비록 그때 내가없다고 하여도 누군가는 그 모습을 지켜 볼 것입니다.

 

 

꽁꽁얼은 저수지위를 누군가 걸어갔습니다.

한 겨울 추위가 아니라면 저 깊은곳 까지 누가 걸어갈 수 있을까요.

하지만 그 얼음위에서도 저렇듯 제모습 그대로 자랑하고있는 나무를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낚시도 현대화되어 이젠 수상좌대위에 저렇듯 LPG에 의한 난방을 하면서 낚시를

한다니, 예전에 덜덜 떨어가며, 꽁꽁 멀어가며 낚시한던 모습이 스치듯 지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