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꺼지지 않는 독립의 등불 장준하 선생】

2015. 8. 17. 06:00여행지/경기도

광복 70주년은 지났지만, 완전한 독립이 되었을까? 그 답답함에 장준하 선생을 기리는 장준하공원을 찾았습니다.

 

 

통일동산 주차장을 지나쳐 조금 더 가면 도로변에 있습니다.

 

 

잔디밭에 조성된 화강암, 아주 단순합니다.

 

 

하지만 이곳에 선생의 삶에 대한 기록이 단단히 새겨져 있습니다.

 

 

성장기와 청년기는 교육에 몰두한 시기였습니다.

 

 

학문과 신학에 뜻을 두고 결혼까지 무난했습니다.

 

 

부친의 독립운동에 영향을 받은 선생은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탈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목숨을 건 파촉령을 넘는 6천리 대장정 끝에 중경 임시정부에 합류합니다.

 

 

8.15와 더불어 구국장정의 길이 마무리 되는 듯합니다.

 

 

지성의 좌표 사상계의 발행을 시작으로 언론인의 길을 걷게 됩니다.

 

 

독재에 맞서 조금도 물러남이 없으셨습니다, 그로 인해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합니다.

 

 

민주혼의 숨결, 이승만정권의 몰락에 이어 5.16쿠테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에 맞서 정치인의 길을 갑니다.

만주군 장교와 광복군 장교의 대결로도 회자 되었다고 합니다.

 

 

975년 포천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으로 돌아옵니다.

(이장 시 선생의 유골을 수습하니 두개골에 외부 물리력에 의한 함몰 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습니다.)

 

 

선생이 걸어온 길...

 

 

돌베개와 사상계 이 두 가지가 선생을 있는 그대로 알 수 있게 해줄 겁니다.

 

 

저는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 관장의 장준하 평전을 읽어봤습니다. 6천리 대장정이 주는 의미와 과정은 전율 그 자체였습니다.

 

 

독재시대에 정론직필의 월간지가 10만부가 발행되었으니 독재자가 두려워할 만도 하지요.

 

 

창간호의 모습입니다.

 

 

공원을 조성한 취지문입니다.

 

 

과연 이 취지문대로 되고는 있는 것인지.

 

 

돌베개의 구절을 올려봅니다.

 

 

못난 조상이 되지 말아야겠습니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의 영결미사 말씀입니다.

 

 

정말 다시금 빛이 되어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셨으면 합니다.

 

 

자금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에게도 이러한 동기부여가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건너편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한번 바라봅니다.

 

 

말라버린 모습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이 포스팅이 올라가는 날, 바로 장준하 선생님 40주기 추모식이 있습니다.

선생의 길과 생각을 다시금 되새기고 높이 받들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