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2. 7. 06:30ㆍ여행지/경기도
아침을 먹기 위해 염치한우촌으로 왔습니다.
염치정육식당이 전에 있던 자리와 모습이 아니어서 헷갈립니다. (예전모습 http://blog.daum.net/m9419/593 )
물어보니 화재가 있었다고 합니다.
해서 반대편으로 옮겨서 새로 오픈했다고 하더군요. 어쩐지 허름했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메뉴는 그대로입니다.
갈비탕에 육사시미를 시켰습니다.
아침부터 육사시미를 먹고 싶어 하는 우리 가족 대단합니다. 이집 육사시미는 깍뚝 썰기로 나옵니다.
간단하게 차려진 상의 모습입니다.
시골 맛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저녁시간에 구이용 고기를 주문하면 해장국에 각종 나물까지 한상 가득합니다.
갈비탕입니다, 어제 낙원가든에서 먹었던 앉은뱅이 갈비탕과비교를 하더니
아이들이 국물맛과 고기의 맛이 확실히 다르다고 합니다.
아침 든든히 먹고 작은아이 커피를 즐기는 모습을 집사람이 담은 모양입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위치란 요당리 성지에 왔습니다.
이쪽으로 오가며 이정표만 보았기에 한번 들리려 마음먹었던 곳입니다.
성지 반대편의 모습입니다. 수확을 하지 않은 것인지 좋은 땅에...
겨울나무 한그루가 이 벌판 같은 밭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농촌의 어려움이 느껴지는 모습...
작물을 그대로 동사 시켜야만 했을 농부의 마음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어 무거움이 밀려왔습니다.
『이곳 요당리 성지는 복음이 언제 전파 되었는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신유박해(1801년)를 기점으로 서울과 충청도 내포 등지의 신자들이
피난하면서 형성된 교우촌이라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형성된 교우촌은 양간공소라 불리며 갓등이(현재의 왕림)와
은이공소(현재의 양지)와 깊이 연계되어 활발하게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바닷물이 유입되어 뱃길이 열렸던
이곳의 지리적 특성상 충청도와 경기도 내륙, 서울을 잇는 선교루트의
교두보 역할을 하였던 곳으로 추정되고 있을뿐 아니라, 기해년 (1839년)과
병인년 (1866년)에 일어난 두 번의 박해를 통해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로 하느님을 증거한 신앙의 요람지 였습니다. 이런 유서깊은 곳이었기에 이곳에는
다음과 같은 성인들과 순교자들의 얼이 서려 있습니다.
첫째, 장주기(요셉, 1803-1866) 성인과 125위 시복추진자인
장 토마스(1815-1866)의 출생지이자 신앙의 터전이었고,
이곳 출신 순교자로서 지타대오, 림베드로, 조명오(베드로),
홍원여(가를로)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울러 장주기(요셉) 성인의
친인척이자 이곳 출신 순교자로 추정되는 장경언, 장치선, 장한여,
장요한, 방씨 등이 있습니다. 둘째, 교회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전답이 운영되었던 곳으로
그 책임을 맡았고 끝내는 순교하신 민극가(스테파노, 1787-1840)성인과
이곳에서 공소회장을 맡으며 신앙전파에 힘쓰다 순교하신
정화경(안드레아, 1808-1840) 성인께서 활동하셨던 곳입니다.
셋째,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셨다가 순교하신
앵베르 범(라우렌시오, 1796-1839) 성인과 이분의 피신을 돕다가
순교하신 손경서(안드레아, 1799-1839) 순교자의 얼이 서려 있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요당리 성지는 이러한 역사적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단순히 "장주기(요셉) 성인의 출생지이고, 예전부터 교우촌이 형성되어
있었던 곳 이다" 라는 정도로 치부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에서
멀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점을 안타깝게 여겼던
최덕기(바오로) 주교는 2006년 9월 26일 성지 전담 사제를 파견함으로써
성지개발에 대한 의지를 대내외적으로 천명하게 되었습니다.(요당리성지)』
묵주기도의 길이 보입니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도 있습니다.
기도의 광장 왼편으로 대성당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성모상 앞에 이곳을 찾은 분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었습니다.
묶여버린 예수그리스도의 손을 통해 고난의 시작을 이야기합니다.
언제 바라봐도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성모상입니다.
성인과 순교자의 묘지로 향하는 계단을 바라봅니다.
거룩한 성인과 순교자의 영혼이 깃들어 있는 곳입니다.
그 거룩한 영혼을 굽어 살피는 예수그리스도의 거대한 십자가가 있습니다.
대성당의 앞모습입니다.
신자가 봉헌한 조형물이 대성당 앞에 있습니다. 모아진 손안에 지극한 사랑이 가득 느껴지는 모습입니다.
대성당을 끼고 한 바퀴 돌고 있습니다.
평화를 염원하는 모습으로 느껴졌습니다.
날개가 의미하는 것은 단지 천사뿐 아니라 자유라는 느낌을 지니게 해주었습니다.
몇 년 만에 가족이 함께한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아이들이 성인이 된지도 벌서 5, 6년, 이제 자신들의 삶이 다음단계로 진행되겠지요.
어떠한 길을 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을 스스로 정하고 노력하고 헤쳐 나가길
묵묵히 지켜봐 주는 것이 더 좋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제는 간섭을 받는 객체가 아닌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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