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지/경기도

【파주여행, 파주의 가볼만한곳-6】

나이가사 2012. 1. 12. 07:14

넷상에서 가끔 접해본 곳 '프로방스 마을'...

어떨까 하는 호기심에 집으로 가기전에 마지막 코스로 들렸습니다.

다행히 중간에 임시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그곳에 차를 세웠습니다.

처음 눈에들어온 흰색의 조화가 어울어진 Kid Furnithre(아동가구)를 취급하는

상점입니다.  핸드메이드라고 하는군요.

유럽풍의 외벽 익스테리어와 색상이 이곳의 이정표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대략난감... 도대체 어느 방향이 프로방스로 가는길인지..

 

 

그 난감함은 금세 풀렸습니다.

평화누리길을 알려주는 이정표에 반구정 가는길과 프로방스 가는길을 안내해 주고 있었습니다.

 

 

길을따라 올라오니 외관에서 프랑스? 그런 느낌이 드는것 같습니다. 특이하게 경주빵집도 있습니다.

 

 

카페, 가구점, 음식점이 있네요. 색감과 익스테리어를 가지고 이국적인 멋을 부린것이 아주 독특합니다.

 

 

마을입구로 들어가는 큰골목 어귀입니다.

평범한 건물에 재치있는 멋을부리니 마치 마법사의 손길을 거친듯 합니다.

 

 

새삼스럽게 우리나라 사람의 감각과 손재주가 정녕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을의 도심도 이런곳에서 아이디어를 빌어 디자인했다면, 서울이란 도시가 갖는 역사성, 특화성을

충분히 살리고도 남을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디자인 서울 한다고 무식하게 토목, 건축에만 열올리고 예산 펑펑낭비한 생각을 하니, 한심합니다.

 

  

이제 좀 감이 잡힙니다.

외관의 디자인과 색감을 프로방스하게 만들고 특화된 공간으로 만든 상업지구입니다.

물론 체험의 공간은 요즘 젊은세대를 끌어안는 필수공간이지요.

그리고 빠질수 없는 요소, 수제(Hand made), 즉 특별하게 만들어지고 정성이 들어갔다는

차별성이 요즘 하는 말로 '난 소중하니까!'와 맞아 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야외에서 물이 움직이는 작은 쉼터도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저 중앙의 돌절구통엔 동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프로방스라는 훼밀리 레스토랑이 있습니다. 도데체 프로방스가 뭘까요? Provence...

프랑스 남동부의 부슈뒤론·보클뤼즈·알프드오트프로방스·바르 주들을 포함하고 있는 역사적·문화적 지방.】

지명적으로 표시한 다음백과의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을 한번 들여더 봤습니다, 역시 다음백과에서 빌려왔습니다.

 옛 프로방스 지방과 거의 일치하고, 오늘날의 프로방스알프코트다쥐르 계획지방과도 같다.

BC 6세기초 이 지역에 그리스의 식민지가 건설되면서(지금의 마르세유인 마실리아도 여기에 해당됨)

프로방스는 처음으로 지중해 문화에 동화되었다.

BC 125년 마실리아인들은 인접한 켈트족과 리구리아족의 연합에 대항하여 로마에 도움을 요청했다.

로마인들은 이 두 부족의 연합군을 격퇴시킨 후 계속 이 지역을 점령하게 되었다.

BC 2세기말경 프로방스는 알프스 산맥 너머에 최초로 세워진 로마의 속주인 갈리아트란살피나의 일부가 되었고,

프로방스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4세기경 갈리아 지역을 다스리던 로마 장관은 상인들의 집결지였던 아를을 소재지로 삼았고,

마르세유는 그리스 학문의 주요중심지가 되었다.

5세기말 로마 제국이 붕괴된 후 프로방스는 계속해서 서고트족·부르고뉴인·동고트족의 침공을 받았다.

536년경 프랑크족의 지배하에 놓였다가 곧 프랑크 왕국의 메로빙거 왕조의 통치를 받게 되었지만

프랑스의 나머지 지역에 통합되지는 않았다.

카롤링거 왕조의 위대한 통치자들은 프로방스에서 프랑크 왕국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했다.

그러나 카롤링거 왕조가 몰락한 뒤 프로방스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서 연속적으로 세워졌던

여러 왕국에 속하게 되었다.

프로방스의 제1왕국은 855~863년, 제2왕국은 879~934년 지속되었다.

그후 아를의 왕국인 부르고뉴-프로방스가 1032년 명목상 신성 로마 제국에 합병되었다.

10세기말 지방 왕조(이슬람교도의 침공으로부터 지역을 방어했음)가 이 지역을 지배했고,

프로방스 백작 칭호를 얻었다.

1113년 이 왕조의 몰락과 함께 바르셀로나 가문이 대신 칭호를 획득하여 프로방스는

1세기 이상을 카탈루냐 출신의 스페인인들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12세기에 프로방스의 도시들은 레반트인들과의 교역을 통해 번영을 누렸고,

집정정부라 불리는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바로 이즈음에 프로방스의 문화는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는데,

라틴어와 유사한 프로방스어가 사용되었으며, 음유시와 초기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물들 등 뛰어난

문화업적이 이루어졌다.

13세기초에 일어난 알비파의 종교운동은 결국 로마 가톨릭 교회가 남부 프랑스에 형성된

카타리파를 진압하는 것으로 끝났다(→ 알비 십자군).

프로방스는 카타리파의 근거지가 아니었던 까닭에 재난을 피할 수 있었지만 교황권과 북부 프랑스의

영향력이 전파되었다.

교황은 13세기초 프로방스 북부에 론 강을 끼고 있는 콩타브네생을 차지했고 1309~77년 아비뇽에 거주했다.

프로방스는 1246년에 루이 9세의 동생인 앙주 왕가의 샤를에게로 넘어가면서 북부 프랑스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나폴리의 왕족이자 프로방스를 통치한 이탈리아계 앙주 백작가의 지배력에 종속되어 있었으나

그들의 지배하에서 독특한 정치제도들을 많이 발전시켰다(→ 앙주 왕조).

그 대표격인 의회는 14세기말에 세제를 인가하는 힘과 불안정한 상황에서 지역의 치안에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1481년 프로방스는 합병을 원하는 프랑스 왕의 뜻에 따라 계속 행정적인 자치체로 남아 있는다는

조건하에 프랑스로 통합되었다.

그러나 16~18세기에 왕의 통치권이 계속 확대되었다.

1673년 엑스 제네랄리테(행정지역의 하나)가 지방행정장관(왕실의 장관)의 소재지로 설립되었으나

프로방스의 의회는 1639년부터 프랑스 혁명이 일어나기 바로 전인 1787년까지 한 번도 소집되지 않았다.

프랑스 혁명으로 프로방스는 독특한 정치제도들을 완전히 잃어버렸고,

1790년에 부슈뒤론·바르·바스잘프(지금의 알프드오트프로방스) 주들로 분할되었다.

보클뤼즈 주가 1791년 콩타브네생의 합병 후에 프로방스에 병합되었고,

1860년 니스 지역과 함께 알프마리팀 주가 합병되었다.프로방스 지방은 프랑스 남동부의 지

중해 해안선 지대와 이에 바로 접해 있는

내륙지역(대부분이 구릉지대이거나 산악지대)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민 대부분이 로마 가톨릭교도이지만 마르세유 주변과 보클뤼즈 주의 루르마랭 및 메랭돌 주변에는

많은 수의 개신교도들이 살고 있다.

북아프리카로부터 본국으로 송환되는 이주민들로 인해 유대인 수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콩타브네생에서는 지금도 프로방스어를 사용하고 있다.

궁굼증이 많거나 학구열이 강하신 분들을 위해 긴글을 빌려왔습니다.

 

 

프로방스 마을 안내도입니다. 거의가 상업지구입니다.